책 제목만으로도 읽고 싶어지는 책이 있다.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How the World Really Works)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 우리는 세상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무엇이 문명을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지 설명하려 하면 막연한 이미지나 익숙한 구호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의 저자 바츨라프 스밀(Vaclav Smil)은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포착하여 드러낸다.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기보다 지금의 세계가 어떤 조건 위에서 유지되고 있는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바츨라프 스밀은 에너지와 산업 문명의 역사, 기술 발전과 환경 문제를 연구해 온 학자다. 그는 미래에 대한 낙관이나 비관 대신 실제 수치와 물리적 조건을 통해 현대 문명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보여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책 역시 거창한 전망을 제시하기보다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시스템의 구조를 이해하도록 이끈다.
책의 초반에서 가장 크게 와닿은 부분은 현대 문명이 화석연료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우리가 먹는 식량조차 햇빛과 토양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 그리고 전기를 거쳐야 비로소 식탁에 오른다. 결국 앞으로도 우리는 형태만 달라진 화석연료를 소비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말은 과장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설명하는 해석에 가깝다.
나 역시 여러 매체에 글을 쓰며 인공지능이나 새로운 의료기술이 가져올 변화에 기대를 담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기술의 발전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어떤 기술도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 체계 위에서만 작동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기술은 방향을 바꿀 수는 있어도 현실의 기반을 단번에 넘어설 수는 없다.
이 인식은 세계화에 대한 저자의 관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스밀은 세계화를 상품과 서비스의 이동, 기술과 투자, 사람과 정보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상호 의존성(interdependence)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핵심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의 소비와 선택은 어느 하나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식량과 에너지, 기술과 산업은 모두 세계적인 공급망 속에서 움직인다.
이 지점에서 저자가 소위 녹색 운동(green movement)을 향해 보이는 비판적 시선도 이해된다. 문제는 환경 보호 자체가 아니다. 현실의 복잡성을 무시한 채 도덕적 이미지로 단순화하는 태도다. 녹색이라는 상징을 통해 영향력과 신뢰를 얻으면서 실제 조건에 대한 논의를 생략하는 모습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늦출 수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소위 환경 운동가들이 보이는 이런 위선적인 태도에 불편함을 느껴 왔다. 전기차처럼 친환경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술조차도 막대한 에너지 생산과 글로벌 공급망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개인의 선택을 선악의 이분법적인 잣대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총체적인 구조를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가에 달렸다. 이 책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 이유도 바로 그 점에 있었다.
후반부의 ‘위험’에 대한 논의 역시 인상 깊다. 우리는 각종 사고와 질병, 재난 소식을 끊임없이 접하며 점점 더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저자는 정보의 반복과 과장이 위험을 실제보다 크게 느끼게 만든다고 말한다.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다만 그것을 줄이려 노력할 뿐이다.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 자체가 오히려 균형 잡힌 판단으로 이어진다. 이 부분에서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스의 신화』(Le Mythe de Sisyphe)가 떠올랐다. 끝없이 굴러 떨어질 돌을 다시 밀어 올리는 행위처럼, 인간의 진보 역시 완성되는 순간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과정 속에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위험을 줄이려는 반복적인 시도 자체가 인간 사회를 앞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는 일전에 서평으로도 남겼던 『팩트풀니스』(Factfulness)와 비교해가며 읽을 만하다. 두 책 모두 통계와 데이터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을 교정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그러나 『팩트풀니스』가 세상이 생각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비관을 완화했다면,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는 쉽게 믿어버린 낙관을 경계하게 만든다. 숫자는 희망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현실의 한계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라는 점에서 두 책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자신이 낙관론자도 비관론자도 아니라고 말한다. 미래의 에너지 소비나 환경 상황이 어디쯤에 있을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성급한 일반화와 단정적인 전망을 경계하라는 그의 태도는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된다. 세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며,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안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세상을 바라보는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수치와 전망을 접하면 그 배경과 전제가 무엇인지 한 번 더 살피게 되었고, 확신에 앞서 실체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남았다. 에너지 문제나 환경, 세계화처럼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주제를 차분히 바라보고 싶은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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