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학창시절 심장 수술을 받았습니다. 세 번 받았습니다. 가슴에 인공 판막을 심었습니다. 종종 숨이 가쁘고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살고 싶었습니다. 이따금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심장이 뛰고 있나 확인했습니다. 아직 뛰고 있었습니다. 살아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자신을 살려준 의사들이 고마웠습니다.
또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꿈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보탬이 되는 길이라 믿었습니다. 의과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의사가 되었습니다. 진료실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돌파하기로 했습니다. 회사를 세웠습니다. IT 기술로 환자와 의사를 연결했습니다.
아팠던 남자와 아픈 이들을 살리고 싶어 한 남자. 이 두 남자는 ‘신승건’이라는 하나의 이름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저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승건(承健)’은 ‘건강을 잇는다’는 의미입니다. 심장병을 갖고 태어난 아들을 향한 유일한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20년 전, 저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임상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의대생 시절 병원 안팎에서 보아온 그 어느 환자보다도 저 스스로가 힘든 날들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두려웠습니다. 부지불식간에 다른 환자들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다들 각자 나름대로 인생의 가장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그들의 고통을 가볍게 여길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제가 만날 환자들에게 저 자신이 좋은 의사가 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임상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의사로서 환자에게 공감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외에 다른 문제도 있었습니다. 저 스스로가 주위에 병력을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질병은 한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 요소라는 점에서 보았을 때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것이 편견과 차별을 조장한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숱하게 경험했습니다.
제가 환자들을 바라보며 ‘나도 저들보다 더 아팠는데 저 정도는 견딜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저를 바라보며 ‘저 정도로 아픈데 과연 믿고 함께 할 수 있을까’라고 미심쩍어하는 것은 제가 평범한 의사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이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장애물을 넘지 못했습니다. 남에게 편견을 갖고 싶지도 않았고, 역으로 차별을 당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받기 싫은 대우를 남에게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저 자신의 자존감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상에서 진료를 보는 것을 접었고, 제가 아팠던 과거를 드러내지도 않았습니다.
그 대신 저는 환자를 보지 않는 길을 택했습니다. 대학원에 들어갔고, 또 사회에 나와서는 원격의료 IT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한동안은 꽤 만족했습니다. 혁신적이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언가 세상에 대단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다른 의사들이 임상에서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동안,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는 ‘척’만 하고 있을 뿐, 실제로 누군가를 살리는 일에 기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의사가 아니라 의사인 척하며 주위에서 겉도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환자를 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30대 초에 뒤늦게 병원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병원 수련을 결정할 즈음 의사의 본질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답은 명확했습니다. “의사란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자’이다.” 그게 제가 얻은 답이었습니다.
모든 직업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그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의사, 판사, 변호사 등이 대표적인 전문가로 손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상대적으로 더 약한 상태에 놓인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많은 이들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보편적 의료를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공공병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회 안전망으로서 보건 의료의 중요성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인턴부터 레지던트로 이어지는 5년의 수련 기간을 마감할 즈음, 저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내다보았습니다.
삶을 항상 바라는 대로 살 수는 없겠지만, ‘반드시 이것만은 충족하고 싶다’하는 것을 정하였습니다. 다음의 세 가지는 제가 의사로서 놓치고 싶지 않은 목표입니다.
첫째, ‘더 깊게’ 의업의 본질인 사람들의 건강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둘째, ‘더 넓게’ 보건 의료의 혜택을 전하고 싶습니다.
셋째, ‘더 가깝게’ 환자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저의 삶은 명실공히 선물로 받은 삶입니다. 그 선물은 의사들이 전해주었지만, 그것이 가능하도록 뒷받침이 되어준 것은 이 나라의 보건 의료 정책입니다. 뛰어난 의료 보험 제도를 비롯한 보건 의료 정책 덕분에 저는 수술비 걱정 없이 심장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의사라는 꿈도 이루었습니다.
저는 이제 보건 의료 정책의 일선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그런 공무원이 되려고 합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세상에 진 빚을 돌려줄 차례입니다.
- 2023.1~ 현재: 부산광역시 연제구 보건소 보건소장
- 2023.1~2023.1: 부산광역시청 감염병관리과 과장
- 2022.9~2022.12: 부산광역시청 역학조사관
- 2018.11~2021.9: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보건소 건강증진과장
- 2014.3~2018.2: 국립중앙의료원 외과 레지던트
- 2013.3~2014.2: 국립중앙의료원 인턴
- 2007~2012: 고려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석사
- 2000~2006: 고려대학교 의학과 학사
- 1997~2000: 거창고등학교
- “난 환자이자 의사…누구든 환자가 돼, 의사들 빨리 돌아와야” – 조선일보, 2024년 4월 17일
- “심장병 이겨내고 의사 돼…어린 환우에 힘 주고파” – 국제신문, 2021년 7월 29일
- 3살·11살·17살 대수술 이겨낸 아이는 이렇게 됐습니다 – JobsN(조선일보X네이버), 2021년 2월 7일
- 심장병 소년, 의사가 되다…”포기하지 마세요” – 연합뉴스, 2020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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