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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

잊을 만하면 인터넷에 올라오는 영상이 있다. 식당에서, 편의점에서, 콜센터 통화 녹음에서.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 않는 사람, 말이 닿지 않는 상대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버텨내는 누군가의 모습. 보는 사람은 분노하고 공유하고 잊는다. 내가 일하는 보건소도 예외가 아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민원인 앞에 서본 적이 있다. 그 순간 느끼는 것은 단순한 답답함이 아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벗어나고 나면 어김없이 뒤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저런 존재가 된 적이 없는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존재 앞에서 느끼는 공포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내가 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쉽게 잊힌다.

만화가 이사야마 하지메도 그 공포를 알고 있었다. 도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취객에게 멱살을 잡혔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그 혼란 속에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존재가 주는 두려움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공포를 작품의 근간으로 삼았다. 거인은 거기서 태어났다. 그런데 그 거인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다.

그 거인의 형상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오래된 상상력이 담겨 있다. 인간이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무언가 안으로 들어가 그것을 움직인다는 상상이다. 철인 28호에서 시작해 마징가 Z, 건담, 에반게리온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그 흔적이다. 파일럿과 기체. 인간이 탑승해야만 기동하고 인간이 빠져나오면 멈춘다.

『진격의 거인』도 이 계보 위에 있다. 거인의 본체는 목덜미 속 인간이다. 거대한 육신은 인간이 깃들어야만 움직이고 인간이 이탈하는 순간 기능을 잃는다. 형태가 철과 회로에서 근육과 혈관으로 바뀌었을 뿐 구조는 다르지 않다. 전후 일본 사회가 통제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을 경험했고 그 경험이 거대 로봇과 괴수라는 상상력으로 반복되어 왔다는 해석은 낯설지 않다. 이 작품은 그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인간 스스로가 병기의 살과 뼈가 되는 형태로 한 단계 더 밀고 나갔다. 통제하는 자와 통제되는 것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다. 그리고 그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 이야기는 전혀 다른 질문을 향해 열린다.

생존극의 형식을 빌렸지만 이 작품의 무게중심은 결국 역사와 기억의 문제로 이동한다. 벽 안의 인류, 벽 밖의 거인, 살아남기 위한 싸움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시즌 3 후반부터 벽 너머의 세계를 드러내면서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괴물과의 전투가 배경으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집단들의 충돌이 채운다.

파라디 섬 안에서 자란 이들에게 그 섬은 유일한 고향이다. 그러나 마레 사람들에게 같은 땅은 과거에 자신들을 짓밟았던 적의 근거지다. 동일한 장소가 기억의 주체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작품은 어느 쪽의 기억이 옳은지 판결하지 않는다. 양쪽의 기억이 모두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더 불편한 것은 그 기억이 개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다음 세대에 강제된다는 점이다.

거인의 힘을 계승하는 자는 전임자의 기억까지 함께 물려받는다. 집단의 피해 의식과 과거의 영광이 혈통을 통해 주입된다. 기록이 아니라 감각으로 살아남는 기억. 그 기억이 개인을 옭아맬 때 인간은 역사의 포로가 된다. 에렌 예거의 비극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에렌의 이야기가 비극적인 것은 그가 실패해서가 아니다. 자유를 갈망하며 나아간 끝에 도달한 곳이 이미 정해진 인과율의 굴레 안이었다는 데 있다. 미래를 보는 힘은 그에게 선택의 여지를 준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비극으로 그를 몰아넣는 형벌이 되었다. 오이디푸스가 운명을 피하려 할수록 운명 속으로 걸어들어간 것처럼. 그리고 이 비극의 핵심에는 언제나 선택과 대가의 문제가 있다.

작품 전반에는 반복되는 인식이 하나 있다. 중요한 것을 지키려면 반드시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걸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탈레브가 『스킨 인 더 게임』에서 말한 것처럼 진정한 선택에는 반드시 자신의 몸이 담보로 걸려야 한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거의 모두 그 조건 아래 놓인다. 그리고 그 대가는 반드시 치러진다.

시즌 3 오프닝 곡 제목은 「Red Swan」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연상이지만 그 제목을 들을 때마다 탈레브의 또 다른 개념인 블랙 스완이 떠올랐다. 탈레브가 『블랙 스완』을 출간한 것은 2007년이었고 이듬해 금융위기가 그 개념을 세상에 각인시켰다. 『진격의 거인』 연재가 시작된 것은 2009년이다. 이사야마가 이 개념을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시기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했으리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예측 불가능하고 극단적인 충격을 주는 사건. 붉게 물든 백조는 그 변형처럼 느껴졌다. 역사의 전환점은 언제나 그런 성격을 띤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고 일어난 뒤에야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 안에서도 역사는 그렇게 움직인다.

이 작품은 결국 인간의 선택과 역사적 책임에 대해 묻는다. 무엇이 우리를 서로의 적으로 만드는가. 역사는 어떻게 개인을 그 안에 가두는가. 선택에는 얼마만큼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가. 괴물과 싸우는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에 남는 것은 이 질문들이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결국 이사야마가 PC방에서 경험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 앞에서 느끼는 공포. 그것이 거인을 낳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공포의 반대편에는 언제나 또 다른 질문이 숨어 있다.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말이 통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어느 순간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거인이 되어 있지는 않은가. 인터넷 영상 속 그 사람들을 보며 분노했던 나는 과연 그들과 얼마나 다른가.

“진격의 거인”의 1개의 댓글

  1.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 공포나 무력감을 느꼈던 순간이 있었나요, 혹은 돌아보니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였을지도 모른다고 느낀 경험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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