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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청 ‘감염병 예방관리 및 위기대응 역량 제고’ 교육

5월 초에 공무원 대상 감염병 교육이 가능하겠는지 문의하는 이메일을 받았다. 감염병 교육이야 늘 해오던 것이니 준비하면 될 일이었지만, 문제는 강의 장소였다. 강릉에 있는 강원도청 제2청사. 교육 시간은 평일 오후 2시.

보건소 업무 관련 교육도 내가 하는 일의 일부라고 생각하기에 교육 요청이 들어오면 가급적 수락하는 게 나의 원칙이다. 하지만 강원도라. 내가 살고 있는 부산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 아닌가. 평일 강의라 연차도 하루 내야 되었기에 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멀리서 나를 찾아준다니 감사한 마음에서라도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현실적인 이동 시간 확인을 위해 인터넷 지도를 열고 이동 시간을 알아보았다. 차를 운전해서 간다면 주행거리는 365km, 4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1시간 반가량의 강의를 위해 왕복 8시간을 운전해야 된다라. 아무래도 운전은 아닌 것으로 초기에 결론을 냈다.

또 다른 대안으로 기차를 알아보았다. 마침 근래에 부산에서 강원도까지 동해선이 개통되었다. 동해선에 속한 신해운대역도 집에서 멀지 않았다. 걸어서 20분 정도. 신해운대역에서 기차를 타고 강릉역에서 내리면 운전보다는 확실히 나은 선택이 될 게 분명했다. 

다만, 그것도 아주 흡족한 해결책은 아닌 것이, 기차 편수가 많지 않아서 꽤 긴 시간을 기차역 대합실에서 보내게 될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강의 장소인 강원도청 제2청사 글로벌관은 내가 내릴 강릉역이 아닌 주문진항 근처에 있다. 강릉역에서 버스를 타고 50여 분 더 가야 하는 곳이다. 물론 강릉역부터 택시를 탈 수도 있겠으나, 나는 다른 대중교통 수단이 정말로 없을 때만 택시를 타는 편이라 이번에도 역시 버스가 나의 발이 되어줄 터였다. 

그래서 퍼즐 맞추듯 시간 조합을 시도해 본 끝에 내려진 결론. 신해운대역에서 5시 51분 기차를 타고 강릉역에 10시 33분 도착. 거기서 잠깐 쉬다가 점심 먹고 강연장으로 출발. 강연을 마친 뒤 다시 강릉역으로 돌아와서 오후 5시 11분 기차를 타고 신해운대역에 밤 10시 12분 도착. 그다음 걸어서 집으로. 꽤 강행군이 될 터였지만, 달리 생각하면 오랜만에 강원도에 바람 쐬러 간다고 생각하며 나서도 좋을 일이었다.

강연 당일. 강원도청 제2청사에 도착하였는데 아직 강연 시간까지 1시간이 남았다. 강원도립대가 청사와 같이 붙어있는데 대학교 학생회관의 ‘커피다’라는 카페에 들어가서 늘 그렇듯 아이스 카페라떼를 시켰다. 카페 이름을 언급하는 건 광고나 그런 건 전혀 아니고, 그 안에 텀블러 셀프 세척기가 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배낭에 있던 텀블러를 꺼내서 넣어보니 안에서 스팀까지 나오는지 뜨끈하게 아주 잘 세척이 되었다. 나중에 우리 보건소나 센터에 하나쯤 가져다 놓아도 좋을 듯싶어서 기록용으로 이 글에도 언급했다.

강연 30분 전이 되자 나와 연락을 주고받았던 주무관이 마중 나왔다. 그분의 안내에 따라 강연을 할 강당 앞에 당도했는데, 여느 공무원 강연이 그렇듯 참석자 사인을 해야 하는 명단이 죽 놓여있었다. 나는 강연을 가면 참석자들의 직렬이 적혀있는 그런 명단을 한 번 눈에 담고 들어가는데, 그래야 강연 때 방향을 잡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강당에 들어가니 팀장님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명함을 서로 교환했는데, 내 명함을 보더니 어디 신 씨냐고 물었다. 보통 어디 신 씨인지 묻는 경우는 십중팔구 내가 속한 영월 신 씨인 경우가 많은데, 신 씨 중에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런 케이스였다. 영월 신 씨가 뭔지 모른다면 신라면에 쓰여있는 그 신 씨를 떠올리면 된다. ‘승’ 자 돌림이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하니, 자신이 나보다 촌수가 높다고 하였다. 나는 왠지 정중히 예의를 갖춰야 할 것 같아서 두 손을 다소곳이 앞에 포개고, 어떻게 하면 강당 마이크를 켤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하였다.

강단에서 슬라이드를 넘길 컴퓨터를 점검하고 있으니 참석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웠다. 강연 자체는 큰 무리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감사하게도 나의 시답잖은 농담에도 다들 잘 호응해 주시고, 무엇보다 법정 감염병 관련 내용이 다소 딱딱할 수 있는데 강의 시간 내내 집중해서 들어줘서 고마웠다. 덕분에 큰 실수 없이 강연을 마무리했다.

강연을 가면 어딜 가나 그곳에서 가장 높은 분이 가장 앞줄에 앉아서, 강연이 끝난 뒤 질문 시간이 되면 강연자가 무안하지 않도록 꼭 질문을 하나씩 해준다.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보건소에서 강연자를 초빙할 때 나는 항상 맨 뒷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다음에는 강의를 들으며 질문할 거리도 생각해 보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강연장으로 돌아와서. 이번에도 가장 높은 분께서 “앞으로 다가올 감염병 위기는 어떤 게 있겠습니까.”라고 유튜브에서 언젠가 비슷한 내용의 콘텐츠를 보았을 법한 무난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나는 곧 그게 무’난해’ 보이는 ‘난해’한 질문이라는 걸 깨달았는데, 의외로 평소에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조금 전까지 감염병에 대해 강연한 사람으로서 답변은 해야 했기에. 약 3초간 딜레이 끝에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거기 묻혀있던 매머드에 숨어있던 탄저균이 풀려나와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엣헴.”이라고, 기후 위기와 감염병 위기라는 두 가지 글로벌 이슈를 한데 묶어 당면한 개인적 위기를 모면했다.

그렇게 강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는데, 신라면 신 씨를 쓰시는 팀장님이 직원에게 나를 강릉역까지 차량으로 데려다 주라고 했다고 한다. 속으로는 고마웠지만, 그래도 나름 부산광역시 공무원으로서 품위가 있지, 예의상 딱 두 번까지만 사양하자고 마음 먹고 정중히 사양했다. 혹시 두 번만 물어보고 마는 거 아닌지 내심 조마조마했으나, 다행히 세 번을 물어봐 주신 덕분에 차를 타고 강릉역에 갈 수 있었다. 결론: 부산 못지않은 강원도 인심을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한 하루였다.

“강원도청 ‘감염병 예방관리 및 위기대응 역량 제고’ 교육”의 1개의 댓글

  1. 이번 글에서는 통상적인 강의 후기의 형식을 벗어나 보았습니다. 생각의 흐름을 따라 쓰다보니 다소 가벼운 글이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좀 더 개인적인 경험을 담을 수 있었던 덕분에, 다른 후기를 쓸 때보다 글을 쓰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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