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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적이 아니다

최근 두 건의 의료사고가 며칠 간격으로 판결이 내려졌다. 하나는 울산에서, 다른 하나는 부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첫 번째 사건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열로 입원한 생후 6개월 아기에게 골수 검사가 필요했다. 골수 검사란 뼈 안의 조혈 조직을 채취해 혈액 질환의 원인을 찾는 처치다. 선배 전공의 두 명이 먼저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소아과 2년차 전공의가 나섰다. 채취에는 성공했지만 바늘이 너무 깊이 들어가 골반 안쪽 동맥이 파열됐고, 아기는 끝내 숨졌다. 부모는 그날 이후 10년 동안 법원을 오가며 긴 싸움을 이어갔다.

두 번째 사건은 2023년에 부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환자는 대장암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이었다. 수술 때 삽입했던 관을 제거해야 했는데 그 처치를 인턴이 단독으로 수행했다. 직후 혈관 안으로 공기가 들어가는 공기색전증이 발생했고 환자는 심장이 멈췄다. 의료진은 심폐소생술로 심장을 다시 뛰게 했지만 환자에게는 왼쪽 팔다리가 마비되는 영구 후유증이 남았다. 암을 이겨낸 사람이 병원 문을 나설 때 남은 것은 마비된 몸이었다.

우리는 두 사건을 접하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리고 곧 분노가 따라온다. 왜 감독 없이 수련의가 혼자 처치했는지, 왜 그렇게 깊이 바늘을 찔렀는지. 그 분노는 정당하다. 그러나 잠깐 마음을 가다듬고 분노가 향하는 곳이 어딘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의사를 향해 분노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런 일이 반복되도록 내버려 둔 구조를 향해 분노하고 있는가.

창원지방법원은 첫 번째 사건에서 전공의의 과실을 인정했고, 부산지방법원은 두 번째 사건에서 인턴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판단의 방향은 달랐다. 그러나 재판이 끝난 뒤 두 피해자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과실이 인정된 창원의 유족은 10년의 싸움이 끝났지만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고, 과실이 인정되지 않은 부산의 환자는 시술 과실 대신 설명의무 위반으로 위자료 일부만 인정받는 데 그쳤다.

그런데 피해를 낸 의사는 모두 수련 중인 인턴과 전공의였다. 재판부는 인턴의 단독 처치를 과실로 보지 않았다. 정부 고시에 따라 인턴이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는 처치였기 때문이다. 수련의가 직접 해 보며 배우도록 설계한 것도, 혼자 할 수 있는 처치의 목록을 정한 것도 국가다. 하지만 그 구조 안에서 사고가 났을 때 국가는 뒤로 물러선다. 잘못이 있으면 의사 개인이 책임지고, 잘못이 없으면 환자가 감당한다. 구조를 설계한 쪽은 어느 경우에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제껏 우리 사회는 의료사고 앞에서 언제나 같은 물음만 던져왔다. “누구의 잘못인가.” 창원 사건의 재판은 10년이 걸렸고, 그 긴 시간 동안 유족의 삶은 멈춰 있었다. 부산의 환자는 불편한 몸으로 재판까지 감당해야 했다. 아이를 잃고도, 몸의 반이 마비되고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다른 물음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의 삶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 이 물음은 처음부터 제대로 던져진 적이 없었다.

의료사고가 나면 의사와 환자는 법정에서 마주 선다. 한쪽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은 상대의 잘못을 입증하려 싸운다. 그 싸움이 길어질수록 의사는 움츠러들고 환자는 지쳐 간다. 사고를 낸 의사는 다음 환자가 두렵고, 사고를 당한 환자는 다음 병원이 두렵다.

잘못을 따지는 일과 삶을 회복하는 일. 지금 우리에게는 이 두 가지가 함께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제도는 전자만 알고 후자는 모른다. 사고 이후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재활을 포기하는 사람, 긴 분쟁 속에서 직장과 일상을 잃어가는 사람. 지역 주민 곁에서 건강을 살피는 일을 하다 보면, 그 공백이 얼마나 엄중한지 매번 실감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판결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잘못을 가리는 데 10년이 걸리는 동안, 삶을 되돌리는 데 쓸 수 있었던 시간도 함께 흘러가 버린다.

의료사고는 어느 쪽도 원하지 않았던 비극이다. 환자에게는 삶이 뿌리째 흔들리는 사건이고, 의사에게도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다. 그런데 우리는 그 비극 앞에서 서로를 향해 분노를 겨누고 있다. 분노를 내려놓자는 말이 아니다. 분노의 방향을 바꾸자는 것이다. 서로를 향한 분노가 아니라, 10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구조를 향한 분노로.

해결의 실마리는 이미 있다. 지금 우리 제도는 피해 보상을 과실 판단에 종속시켜 놓았다. 잘못이 입증돼야 보상이 시작된다. 그러나 두 사건이 보여주듯, 과실이 인정돼도 삶은 돌아오지 않고 과실이 없으면 피해자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더구나 피해의 크기는 과실의 유무와 무관하다. 피해 보상과 과실 판단을 분리하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 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과실을 따지는 절차는 재발 방지를 위해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그 절차가 끝날 때까지 피해자의 삶이 멈춰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적이 아니다.

이 글은 2026년 3월 20일 국제신문에 실린 글입니다.1 저는 의사이자 작가로서 건강, 인문학 등을 주제로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2

“우리는 적이 아니다”의 1개의 댓글

  1. 이 글을 쓰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의사와 환자가 다투는 동안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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