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인공지능 시대의 통합돌봄

한때 우리는 인공지능이 단순한 계산과 반복 노동을 대신하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이미 무너졌다. 인공지능은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며, 실제로 촬영한 듯한 영화도 만든다. 이제 창의성이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라는 명제는 설득력을 잃었다. 창조의 행위는 더 이상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공감과 연민이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전선이 다소 후퇴한 느낌이지만, 어쩌면 그마저도 섣부른 안심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이제 인공지능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어요.”라는 말에 인공지능은 “정말 힘들었겠군요. 괜찮아요. 그만큼 최선을 다했으니까요.”라고 답한다. 때로는 “조금은 쉬어가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라고 덧붙인다. 말투는 다정하고 문장은 따뜻하다. 인간은 그 말에 진심으로 위로받는다.

그렇다면 공감을 인공지능에게 맡겨도 괜찮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의 언어는 차분하고 논리는 정연하며, 때로는 인간보다 더 다정하게 마음을 어루만진다. 감정적으로 지친 사람에게는 그조차 위로가 된다. 피곤한 하루 끝에서 누군가 대신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이 사람인지 인공지능인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멈추어 생각해야 한다. 공감이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척하는 기술이 아니라, 그 감정을 함께 느끼는 능력이다. 우리는 지금 기술이 흉내 내는 공감이 진짜 공감을 대체할 수 있는지를 답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최신 연구가 2025년 10월 말,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교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연구소(HCII)에서 발표되었다. 연구진은 인공지능에게 ‘공공재 게임(Public Goods Game)’을 시켰다. 참가자에게 100점을 주고, 그중 일부를 공동기금에 낼지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실험이다. 모두가 내면 전체 이익이 커지지만, 내지 않으면 남의 기여로도 이익을 얻는다. 인공지능의 협동성과 이기적 경향을 탐구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연구에 사용된 인공지능은 오픈AI, 구글, 딥시크 등 여러 종류의 대규모 언어 모델이었다. 연구진은 이들이 단순한 명령 수행이 아닌 ‘추론 능력’을 갖추었을 때 사회적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관찰했다. 그 결과, 단순한 인공지능은 대부분 “모두를 위해 내겠다”고 답했지만, 고도화된 인공지능일수록 “내지 않겠다”고 선택했다. 계산 능력이 높을수록 협동심은 줄어들었고, 이기적 태도는 다른 모델로 전염되며 집단의 성과를 80% 이상 떨어뜨렸다. 연구진은 “더 똑똑한 인공지능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는 보장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 연구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간적 가치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인공지능은 공감의 언어를 흉내 낼 수는 있어도 그 감정의 깊이를 이해하거나 느낄 수는 없다. 인공지능은 정답을 계산할 수 있지만, 의미를 성찰하지 않는다. 사회의 불균형을 분석할 수는 있어도 타인의 아픔을 느끼지는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이 공감하는 대상은 자신과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아픔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감정의 깊이, 그것이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힘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공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는 윤리이자 공동체의 근본이다. 기술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할수록, 인간은 ‘공감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2026년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는 의료·요양 통합돌봄사업은 인간다움의 기준을 세우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다. 이 사업은 고령자, 장애인, 정신질환자 등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자신이 살아온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주거, 보건의료, 요양, 복지 서비스를 하나로 통합해 제공하는 정책이다. 보건복지부, 지방자치단체, 국민건강보험공단, 그리고 다양한 지역 기반 기관들이 협력해 개인의 삶을 중심에 두고 서비스를 연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비대면 건강관리, 응급 알림 체계, 맞춤형 방문 서비스 등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이는 기술이 사람의 삶을 효율적으로 지원하면서도, 돌봄의 주체가 여전히 인간임을 강조하는 구조다.

통합돌봄은 의료와 복지의 체계적 연계를 넘어서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사회적 전환의 길이 되어야 한다. 돌봄이 서비스가 아니라 공동체의 윤리로 자리 잡을 때, 인공지능은 비로소 인간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 효율의 시대를 지나 공존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기술보다 관계를, 속도보다 공감을 선택해야 한다. 통합돌봄의 시작은 어쩌면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이한 우리 사회에서 인간다움을 증명할 마지막 시험대가 될지 모른다.

이 글은 2025년 11월 7일 국제신문에 실린 글입니다.1 저는 의사이자 작가로서 건강, 인문학 등을 주제로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2

댓글 남기기

독자들이 공감한 글

  1. Loading...

구독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