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와 엑스마르세유대학교 연구진은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4만 8천 년 동안 얼어 있던 바이러스를 되살렸습니다. 연구를 이끈 장 미셸 클라브리 교수는 “지구 온난화로 이런 병원체가 다시 노출되면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감염 위험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들 미생물은 현대 인류의 방어 체계가 대응해 본 경험이 없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몸이 한 번도 맞서 싸워 본 적이 없는 상대이지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미지의 병원체’는 북극의 얼음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만든 항생제를 이겨 내며 살아남은 세균이 이제는 인간의 곁에서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세균과 맞선 인류의 첫 무기
인류는 오랜 세월 세균 감염에 무방비였습니다. 상처 하나로 패혈증이 생기고, 출산이나 감기 합병증으로 생명을 잃는 일이 흔했습니다. 세균을 막을 방어 수단이 없던 시대였습니다.
1928년, 영국의 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항생제는 세균의 세포벽 합성이나 단백질 합성, DNA 복제 같은 생명 유지 과정을 억제해 세균을 죽이거나 성장을 멈추게 하는 치료 수단입니다. 이 혁신 덕분에 인류는 폐렴, 패혈증, 결핵 같은 질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세균과 싸울 수 있는 방패를 손에 쥔 것이지요.
항생제 내성균의 등장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항생제의 사용이 늘어나자 일부 세균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살아남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를 다른 세균에게 전달하며 점점 강해졌습니다. 항생제에 노출될수록 내성은 더 빠르게 퍼졌습니다.
1940년대 초부터 페니실린에 내성을 보이는 세균이 보고되었고, 1961년에는 영국에서 메티실린에도 견디는 황색포도상구균(MRSA)이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1980년대에는 카바페넴, 1990년대에는 반코마이신 같은 강력한 항생제에도 내성을 지닌 세균이 등장했습니다. 더 강한 항생제가 개발될수록 세균은 더 영리해졌습니다. 감염병으로부터 인류를 지켜 주던 무기가 점점 무뎌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상 속의 항생제 내성균
이제 항생제 내성균은 병원 안에서만 머물지 않습니다. 항생제는 가축의 성장 촉진이나 질병 예방을 위해서도 사용되는데요. 오늘날 사용되는 항생제의 70% 이상은 인간이 아니라 돼지나 닭 같은 가축에게 투여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투여된 항생제의 잔류물은 고기 자체에 남을 뿐 아니라 배설물이나 하수를 통해 토양과 하천으로 흘러듭니다. 그곳에서 미생물은 항생제에 노출되고 살아남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내성을 익힌 세균은 농작물, 가축, 물을 통해 다시 인간에게 돌아옵니다. 결국 우리가 소비하는 식품과 환경이 항생제 내성균이 확산되는 연결고리가 됩니다. 항생제 내성이 의료 현장에만 머물지 않고 생태계와 우리의 생활 속까지 깊숙이 퍼지는 문제인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의 항생제 남용 현실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여전히 높은 수준입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2023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량은 OECD 평균의 약 1.3배로 상위권에 속합니다. 숫자만 보면 작아 보이지만, 전국 단위로 환산하면 매일 수백만 명이 불필요한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절반 이상이 꼭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감기나 인후통처럼 대부분 바이러스가 원인인 질환에도 항생제가 처방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의료진의 관행적인 처방과 환자의 요구가 맞물리면서, ‘빨리 낫기 위해 항생제를 먹는다’는 잘못된 인식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결과, 병원 안팎에서 내성균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약이 듣지 않는 세균이 더 많아지고, 감염 치료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항생제 남용은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보건 위기입니다.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항생제 내성은 우리가 만들었지만, 마찬가지로 우리가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그 시작은 아주 작은 실천입니다. 처방받은 항생제는 정해진 기간 끝까지 복용하고, 남은 항생제는 반드시 적절한 방식으로 폐기해야 합니다. 버려진 항생제가 하수나 토양으로 흘러가면 세균이 내성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약국뿐 아니라 보건소, 주민센터(행정복지센터), 아파트 단지의 의약품 수거함에서도 손쉽게 반납할 수 있습니다. 장을 볼 때 ‘무항생제’ 표시가 있는 식품을 선택하고,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손 씻기·조리 기구 분리·음식 충분히 익혀 먹기 같은 기본 위생 습관을 지키면 항생제 사용을 줄여서 내성 확산을 막을 수 있습니다.
더 강한 항생제가 등장해도 세균은 돌연변이와 유전자 교환을 통해 다시 살아남습니다. 마치 군비 경쟁과 같습니다. 항생제 내성은 끝나지 않은 경쟁의 결과이지요. 결국 경쟁을 멈추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오늘의 절제된 항생제 사용이 내일의 감염병을 막는 힘인 이유입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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