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첫째 부류는 끊임없이 우는 소리를 내는 음울한 도덕학자들이다. 그들은 그토록 많은 우리의 형제들이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을 끊임없이 비난한다. 매 순간순간을 온갖 종류의 재난의 중압 하에서, 빈곤으로 인한 무기력 속에서, 질병의 고뇌 속에서, 죽음의 공포 속에서, 적들의 모욕과 억압 속에서 노동하는 불쌍한 자기 형제들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성공이나 행운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희열을 느끼는 것은 사악하다고 여긴다. 이 도덕학자들은, 우리가 전혀 본 적도 없고 전혀 들은 적도 없지만 우리의 수많은 형제들에게 언제나 만연하는 비참한 일들에 대한 애도는 행복한 사람들의 환락을 억눌러야 하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항상 어떤 우울하고 실의에 찬 분위기에 젖어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덕감정론』, 애덤 스미스 (을유문화사) p.257
언제부터인가 세상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벌어지면 수챗구멍의 바퀴벌레처럼 기어나와서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의 일상에 시국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설령 기분 좋은 일이 생겨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못하게 억누르며, 혹여 누군가 그런 분위기에 의구심이라도 가지려고 하면 마치 죽을 죄라도 지은 듯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노려본다. 그러면서도 자기들끼리는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은 말을 해놓고 소신 발언이라고 추켜세우는 민망한 일도 서슴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는 사실상 서로 무관한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불운한 일들에 선택적으로 과도하게 몰입하고,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도 그 슬픔을 강요하는 일이 얼마나 무익한 것인지에 대해 말한다. 그런 애도가 정작 그 불운을 겪은 당사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그의 지적은 반박하기 어렵다.
내가 보기에 다른 이들에게 공감을 강요하는 자들이 정말로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은 불운한 상황에 처한 이들을 위한 도움이 아니다. 그들이 진짜로 기대하는 것은 대중들이 자신의 도덕적 우월함을 우러러 보는 상황, 그리고 그것을 통해 타인의 감정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착각하여 현실에서는 존중받지 못한 본인들의 존재를 그런 식으로나마 증명하고픈 욕망이다.
우리는 이것을 지칭하는 아주 적절한 단어를 하나 갖고 있다. 바로 ‘위선’이다. 굳이 그러한 얕은 수에 휘둘리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인생을 허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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