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느끼는 성공의 희열에 대해 우리가 동류의식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남들이 우리를 비난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행운에 대한 우리의 호감은, 만약 어떤 종류의 시기심이 방해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너무 커지기 쉽다.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동감이 결여되어있다고 우리를 비난하는 바로 그 도덕학자들은 행복한 사람들, 권세가들, 부자들에 대해 감탄하고 거의 숭배까지 하기 쉬운 우리의 경박함을 비난한다.
『도덕감정론』, 애덤 스미스 (을유문화사) p.259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한국 가수가 해외에서 인기가 많은 것이 우리 각자가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데 과연 어떤 도움을 주는가. 해외여행 중에 좀 더 친근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많아지고 가끔 한국말도 통해서 번역해야 하는 수고를 더는 것 말고는 잘 모르겠다. 11번째 알파벳을 자부심의 근거로 삼는 현상은 번역기를 돌리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에 대한 반응치고는 좀 과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외국을 다니다 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선진국에 가보아도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러므로 굳이 드러낼 필요 없다. 이미 우리는 그런 수준이 되었으니까. 부자가 통장 잔고를 자랑하지 않듯. 명문대 졸업생이 어느 대학 나왔는지 떠벌리지 않듯. 그걸로 족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래도 된다.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 나온다. 애덤 스미스는 동류의식에서 비롯된 타인의 성공에 대한 과도한 환호는 타인의 불행을 파는 위선자들의 심기를 건드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만큼은 그러한 해석이 들어맞지 않는 듯하다. 우리나라는 타인의 불행에 대한 공감의 강요와 한국적 요소의 성공에 대한 자기동일시가 공존한다. 그리고 이 둘은 공통적으로 남을 통해 자신을 규정하는 정서가 그 바탕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번 주어진 인생이다. 남 때문에 우울해하지 말고, 남의 성공에 흥분하지도 말고, 그저 자신의 삶을 뜻깊게 살아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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