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자유론

자유론 책 표지 존 스튜어트 밀 현대지성 고전 서평 북리뷰

이 책은 영국 거주 시절 같은 가족 기숙사에 살며 인연을 맺은 지인이 선물해 준 책이다. 당시 아내의 유학으로 머물렀던 그곳은 영국 왕실의 각별한 후원 아래 약 한 세기에 가까운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었다.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의 네오 조지안(Neo-Georgian) 양식 외벽과 그 안쪽에 자리한 고요한 중정은 늘 학구적인 정적을 품고 있었다. 그곳은 우리 가족에게 머무는 장소를 넘어, 삶을 가다듬고 생각을 뿌리내릴 수 있게 해준 소중한 기반이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3층에 살았고, 지인의 가족은 바로 아래층에 살았다. 우리 둘 다 딸을 하나씩 키우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또래여서 기숙사에 딸린 정원을 함께 뛰어다니며 놀곤 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그와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삶의 태도와 사유의 깊이 면에서 언제나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어느 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에서 그가 읽어보라며 건네준 책이 바로 이 『자유론』이었다.

사실 자유는 늘 중요하다고 말해 왔지만, 정작 그 개념을 깊이 탐구해 본 적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남에게 간섭받지 않는 상태 정도로만 막연히 이해하고 있었을 뿐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일 것이라 여겼다. 그 이상의 사유는 내게 부재했다. 이 책은 그런 느슨했던 인식을 정교하게 다듬어 준 계기였다. 읽는 동안 나는 지금의 나와, 내가 속한 사회를 함께 되짚게 되었고, 그 고민은 세 갈래의 생각으로 이어졌다.

『자유론』에서 저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개성(individuality)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밀에게 개성은 성격의 차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삶의 주체로 남기 위한 조건이다. 사람마다 능력과 욕구가 다르기에 삶의 방식도 달라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각자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과정에서 판단력이 형성된다. 그 과정에는 시행착오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 시행착오가 허용될 때, 인간은 사고하는 존재로 남는다. 사회 역시 이 다양한 삶의 실험에서 배운다. 새로운 관행과 사유는 평균적 기준이 아니라, 비범한 선택에서 나온다. 그래서 밀은 개성을 억누르는 사회는 질서를 얻는 대신 활력을 잃는다고 보았다. 그는 법보다 더 위험한 것이 사회적 압력이라고 경고했다. 다수의 시선과 관습이 사람들을 닮게 만들 때, 자유는 내부에서부터 훼손된다.

이 대목은 우려스럽게도 오늘의 SNS 환경을 떠올리게 한다. SNS는 명령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준을 만든다. 좋아요와 반응은 어떤 말과 태도가 받아들여지는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처벌이 아니라 평가를 의식한다. 비교는 일상화된다. 감시는 눈에 띄지 않지만, 효과는 분명하다. 안전한 의견이 반복되고, 무난한 취향이 강화된다. 서로를 억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를 조정한다. 이는 밀의 말대로 다수의 횡포(tyranny of the majority)가 다른 형식으로 작동하는 장면이다. 개성이 사라진 사회는 마찰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고의 폭도 함께 줄어든다. 『자유론』이 오늘에도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이 조용한 퇴행을 미리 짚어냈기 때문이다.

『자유론』을 읽으며 두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이 개성이 공직자인 나의 삶 속에서 어떻게 마모되고 있는가라는 문제였다. 나는 공직자로 일하면서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유롭게 쓰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누가 무엇을 쓰지 말라고 말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먼저 선을 긋는 쪽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이 표현은 오해를 부르지 않을지, 이 문제 제기는 조직의 톤에서 벗어나지 않는지 스스로 점검한다. 그 과정에서 생각은 점점 둥글어지고, 글은 무난해진다. 밀의 개성론을 떠올리면, 이 변화는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개성이 사회 발전의 자원이라면, 나는 공직자라는 이유로 그 자원을 스스로 덜어내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불편함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이 자기 검열은 공직자의 직무윤리나 책임감에서 출발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반복될수록 사고의 확장은 멈춘다. 개성은 조직의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조정된다. 밀은 법보다 사회적 압력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공직자의 세계에서는 그 압력이 더욱 정교하게 작동한다. 튀지 않는 판단이 안전하다는 학습이 축적된다. 나는 요즘, 이 안전함이 과연 사회에 이로운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개성이 약해진 공직자가 늘어날수록,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생각의 범위 역시 함께 줄어들기 때문이다. 첫 번째 대목에서 읽어낸 개성의 문제는, 이렇게 두 번째 대목에서 나 자신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세 번째로 시선이 머문 대목은 이 책의 거의 끝에 제시되는 관료제(bureaucracy)에 대한 경고다. 밀은 정부의 권력을 불필요하게 키우는 것이 사회에 큰 해악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관료제가 모든 영역을 책임지게 되면 사회는 편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대중은 점점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관료를 바라본다. 중요한 일은 관료가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일을 보조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시를 기다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은 점점 축소된다. 밀의 관료제 비판은 행정 비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하고 판단하는 인간 능력이 쇠퇴하는 사회에 대한 경고였다.

이 경고는 AI 시대에 그대로 옮겨 읽을 수 있다. 관료의 자리에 AI가 들어서면, 효율과 일관성은 더 강화될 것이다. 그러나 판단이 시스템으로 이전될수록, 인간은 더 쉽게 의존하게 된다.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묻기보다, 시스템이 제시한 답을 따르게 된다. 관료제가 그랬듯, AI 역시 인간을 돕는 도구를 넘어 판단의 주체가 될 위험을 안고 있다. 개성이 약해진 공직자,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 그리고 모든 것을 대신 결정하는 시스템이 결합될 때, 밀의 우려는 현실이 된다. 『자유론』에서 시작된 개성의 문제는, 공직자인 나의 내면을 거쳐, 관료제와 AI라는 구조적 문제로 확장된다.

『자유론』이 시대를 건너 지금까지 읽히는 이유는, 자유를 정의해 주기 때문이 아니다. 이 책은 자유라는 말을 매개로, 사람이 언제 스스로 생각하고 언제 그 생각을 내려놓는지를 비춘다. 개성은 보호받아야 할 권리이기 이전에, 판단을 떠안고 살아가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그 판단을 개인이 계속 감당할 것인지, 조직과 제도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기술에게 넘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책의 여러 대목에서 반복해서 나온다. 『자유론』은 어떤 답을 제시하기보다, 우리가 판단을 넘기려는 순간마다 조용히 길을 막아 서는 책이다.

댓글 남기기

독자들이 공감한 글

  1. Loading...

구독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