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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교육의 일그러진 단상

설 연휴, 크루즈가 정박한 항구와 수많은 선박이 바다 위에 여유로이 떠다니는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싱가포르의 아파트. 창밖의 평화로운 수평선과는 대조적으로, 거실 TV 화면 속에는 한국 사교육의 일그러진 단면이 흐르고 있었다. <추적 60분> ‘7세 고시’ 편. 업로드된 지 일 년이 지났지만, 그 속에 담긴 현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거대한 괴물과 같았다.

영상을 관통하는 화두 중 하나는 ‘석차’였다. 공교육 현장에서 사라진 등수와 서열. 내 아이의 객관적 위치를 확인하지 못해 안달 난 학부모들의 결핍을 학원가는 영리하게 파고들었다. 인터뷰에 응한 한 학부모 역시 그 갈증을 숨기지 않았다. 방송은 이러한 수요를 상술로 이어가는 학원들을 비판적으로 조명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결국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는 법이다.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안도감을 얻으려는 부모들의 욕망이 이 기형적인 시장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동력은 아닐까.

학원들의 전략은 이제 정교함을 넘어 가혹해졌다. 예전처럼 찾아오는 학생을 모두 받아주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그들은 일부러 입학 문턱을 높이고 난해한 시험으로 아이들을 선별한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는 환상을 심어 부모의 욕망을 자극하고, 이를 통해 학원이 ‘갑’이 되어 학부모와 학생을 ‘을’의 위치로 정렬시키는 왜곡된 구도를 만든다. 입학 허가를 받는 것이 마치 대단한 특권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게 만드는 이 고도의 심리전 앞에 부모들은 무력해진다.

가장 씁쓸했던 지점은 유명 수학 학원 대표의 태도였다. 서울대생조차 당황할 정도의 난도를 초등학생에게 요구하는 이유를 묻는 제작진의 질문에, 그는 답변을 회피하며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교육의 본질을 논하기보다 아이들을 줄 세우기 도구로 삼아 비즈니스를 이어가는 그 오만한 태도에서, 학생들을 수단으로만 여기는 학원 업계의 비도덕성을 엿보았다. 이는 교육이 아니라, 명백히 아동에 대한 지적 학대에 가깝다.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의 감소 속에서, 학원가는 남아있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정밀한 ‘수익 창출 타깃’으로 삼는다. 아이들은 꿈을 꾸는 인격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영업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있었다.

딸아이를 키우며 나는 줄곧 선행학습을 멀리해 왔다. 대신 아이가 주도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것을 찾게 하고, 잘 놀고 푹 자는 것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었다. 영상을 보는 내내 나의 그 선택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아니 오히려 다행이었음을 실감했다. 억지로 밀어 넣은 지식에 신음하는 아이들의 모습 위로, 평화롭게 영상을 시청하는 내 딸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이제라도 이 영상을 보게 되어 다행이다. 타국에서 바라본 고국의 교육 현실은 더욱 선명하고 아프게 다가왔다. 이어서 시청한 ‘키 크는 주사’ 편 역시 교육을 넘어 아이들의 신체 성장마저 공포 마케팅의 재료가 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 충격적인 후기도 조만간 정리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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