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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을 때 읽어야 할 책 다섯 권

지난해 6월, MIT 미디어랩 연구진이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공개했다. 대학생을 비롯한 참가자 54명이 에세이를 쓰는 동안 뇌파를 측정한 실험이다. 한 집단은 ChatGPT를, 한 집단은 검색 엔진을 썼고, 나머지는 아무 도구 없이 썼다. 그리고 글을 마친 직후 방금 쓴 에세이에서 한 문장을 인용해 보라고 했다. 그러자 ChatGPT 집단은 83%가 한 문장도 제대로 인용하지 못했는데, 다른 두 집단은 그 비율이 11% 안팎이었다.

물론 섣불리 단정할 일은 아니다. 동료 평가를 거치지 않은 예비 연구였고, 연구진 스스로도 결론을 잠정적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당부했다. 게다가 먼저 혼자 힘으로 쓴 뒤에 ChatGPT를 쓴 사람들의 뇌 활동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도구를 쓰느냐보다 생각을 건너뛰느냐가 갈림길이었던 셈이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는 결국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다. 그래서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문장을 다듬는 요령보다 먼저 왜 쓰는지, 무엇을 쓸지부터 물어야 한다. 여기 다섯 권은 그 물음에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답한 책이다.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 책 표지 이미지, 다나카 히로노부 저, 단순하고 강력한 글쓰기 원칙 소개.

다나카 히로노부 (田中泰延)는 일본 광고회사 덴츠에서 24년 동안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라는 풍경을 보며 시를 쓰는 ‘프로 시인’이다. 그런 그가 이 책이 첫 책이며 자신은 무명 작가일 뿐이라고 거듭 말한다. 하지만 단어의 정의부터 파고드는 모습에서 글쟁이로서의 내공이 드러난다. 이를테면 그는 수필을 ‘사상(事象)과 심상(心象)이 교차하는 곳에 생긴 문장’이라고 정의한다. 내가 겪은 일과 그 일이 불러일으킨 마음이 함께 담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경험만 주르륵 늘어놓거나 기분만 써 내려간 글은 수필로서 실격이다.

저자가 내놓는 또 하나의 정의는 취미다. 취미란 ‘수단이 목적으로 바뀐 것’이다.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대하면 글쓰기의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남의 반응에 신경 쓰기보다 그 글의 첫 번째 독자이자 때로는 유일한 독자인 나 자신을 만족시키라고 조언한다.

내가 꼽는 이 책의 백미는 겨우 4쪽짜리인 11장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은 쓰지 마라’다. 이미 남이 썼거나,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쓸 글은 쓰지 말라는 뜻이다. 이 장을 읽고 나는 실제로 몇 가지를 정리했다. 블로그에서 잠시 운영하던 의학 상담 코너를 닫았는데, 의학 상담은 나 말고도 할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한편 인공지능으로 글을 쓰는 방법을 궁리하던 일도 내려놓았다. 그렇다면 나만 쓸 수 있는 글이란 무엇일까. 그 물음의 답은 글쓰기를 넘어 삶 전체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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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붉은 배경 위에 다양한 필기구가 그려진 책 표지. 제목은 '글쓰기의 최전선'이며, 작가는 은유이다.

어떤 일이든 오래 하다 보면 실력이 쌓이고, 그만큼 자만할 틈도 생긴다. 그런데 내게 글쓰기는 예외였다. 아무리 쓰고 지우기를 거듭해도 내 글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첫 문장이 막히면 엉뚱한 데부터 손을 댔다. 책상을 정리하고, 커피를 내리고, 헤드폰을 쓰고 글쓰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는 식이다. 그래도 글은 써지지 않았다. 애초에 문제가 바깥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유는 내가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 일깨워 주었다. 흔히 글을 생각을 담는 그릇에 비유하는데, 그 그릇에는 ‘있는 그대로의 생각’, 곧 진짜 생각이 담겨야 한다. 진짜 생각이 담기지 않은 글은 남이 시간을 내어 읽을 가치가 없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쓰는 순간 과거의 글이 되지만, 읽는 이에게는 언제나 ‘지금 읽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장마다 나도 모르게 독자가 나를 어떻게 볼지 상상하게 된다.

돌아보니 나도 남의 시선에 기준을 두고 생각을 조금씩 깎아 맞추고 있었다. 그 눈치 보기가 마음의 피로를 쌓았고, 결국 첫 문장조차 쉽게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유를 알고 나니 해법도 보였다. 나는 질 좋은 노트를 한 권 사고, 오래 쓰지 않아 잉크가 굳어 버린 만년필을 꺼내 씻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전제로 쓰기 위해서다. 글이 막히는 진짜 이유를 알고 나면, 해법은 뜻밖에도 문장 기술이 아닌 곳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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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으로서의 글쓰기

텅 빈 들판에 놓인 의자와 그 위에 걸쳐진 재킷이 있는 이미지로, 책 표지 디자인.

서점에 넘쳐나는 글쓰기 책은 크게 두 갈래다. 좋은 글을 ‘어떻게’ 쓰는지 다룬 책과,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 사례로 보여주는 책이다. 그런데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대개 뭔지 모를 갈증이 남는다. 무언가 배운 것 같은데 정작 쓰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나는 그 이유를 ‘왜’가 빠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30년 넘게 선불교 수행과 글쓰기를 접목해 온 나탈리 골드버그 (Natalie Goldberg)는 바로 그 ‘왜’를 묻는다. 그에게 글쓰기는 자기 삶을 성찰하는 수행의 한 형태다. 그래서 그가 내놓는 제안도 수행을 닮았다. 첫째, 하루 중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시간만큼 쓴다. 둘째, 주변의 소재에 거리낌 없이 다가가되, 남이 내 글을 어떻게 볼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셋째, 말하지 말고 그냥 쓴다. 필요 없는 말을 삼가고, 무엇을 쓸지 망설일 시간에 일단 펜부터 들라는 뜻이다.

나에게는 오래된 의문이 하나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병원에 이르기까지 어디를 가든 나와 갈등을 빚는 사람이 꼭 한 명씩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원인이 상대가 아니라 나에게 있다고 가르쳤다. 글쓰기는 그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질적인 방법이었다. 글을 쓰며 상대의 눈으로 나를 보는 훈련을 했고, 이 블로그에는 그 성찰의 결과물이 쌓여 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 내면은 얼음판과 같다. 위에서 보면 매끈하지만 아래에서 보면 울퉁불퉁하고, 그 울퉁불퉁한 공간 덕분에 작은 생물들이 겨울을 난다. 그 얼음 아래를 들여다보려면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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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글쓰기 특강

스케치북 위에 파란 연필과 '서평 글쓰기 특강' 제목이 있는 문서

이 블로그는 외과 레지던트 2년 차에 시작됐다. 고된 병원 생활에 지쳐 자투리 시간마다 손에 잡히는 책을 읽었는데, 두어 달쯤 지나자 이상한 공허함이 찾아왔다. 한 권을 다 읽었다는 성취감은 있었지만, 정작 그 책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짚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읽고 느낀 점을 글로 적기 시작했고, 글이 쌓이자 블로그를 만들었다. 그런데 카테고리 이름을 정하는 데서 막혔다. 책을 평한다는 ‘서평’은 자신이 없었고, ‘독후감’은 개학을 앞두고 몰아서 하던 방학 숙제 같았다. 그래서 고른 이름이 ‘독서록’이었다.

그렇게 5년이 넘게 쓰고 나서야 서평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김민영과 황선애가 함께 쓴 이 책의 답은 분명하다. 서평 쓰기야말로 책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머릿속에 지식을 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뜻에서, 저자들은 이를 ‘출력 독서법’이라고 부른다. 이어서 저자들은 개인의 감상을 적는 독후감과 책을 남에게 소개하는 서평을 구분하고, 발췌, 메모, 개요, 초고, 퇴고로 이어지는 서평 쓰기의 로드맵을 제시한다. 특히 퇴고를 강조하는데, 고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면 처음부터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가 그동안 써 온 글은 서평이라기보다 독후감에 가까웠다. 한편 책 말미에는 매체에서 활동하는 서평가 여섯 명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그중 몇은 나처럼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쓰기에 재미를 붙였다고 한다. 책을 다 읽고도 남는 것이 없다고 느낀다면, 문제는 읽는 방식이 아니라 읽은 다음에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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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픽션

소설 쓰기에 대한 책 표지로, 제목이 '라이팅 픽션'이며 노란 연필이 배치되어 있다.

나는 도무지 소설에 흥미가 없었다. 소설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인 ‘허구’라는 말이 내게는 ‘허무’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 읽은 책과 실제로 겪은 일만 글로 썼고, 그 글들로 첫 에세이집을 냈다. 그런데 바로 그 책을 준비하며 한계를 느꼈다. 실제로 있었던 일만 쓴다는 것은, 아이와 레고 집을 짓다가 꼭 필요한 블록이 없을 때 비슷한 블록으로 때우는 것과 같았다. 완성도를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해야 했던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그래서 소설을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쓴 재닛 버로웨이 (Janet Burroway)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며 소설 여덟 편과 시, 희곡, 에세이, 동화를 낸 작가다. 출판사는 이 책을 미국에서 40년 동안 25만 명 넘는 독자가 읽은 소설 작법서의 고전으로 소개한다. 그런 저자도 도입부에서 글쓰기가 정신적으로 무척 어려운 일이며, 대부분의 작가가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그 어려움을 넘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여기라고 권한다. 이어서 일기와 자유 글쓰기 같은 요령부터, 보여주기와 말해주기의 차이를 다룬 2장을 거쳐 퇴고를 다룬 9장까지 소설 쓰기의 과정을 풍부한 예문과 함께 짚어 간다.

이처럼 체계적인 방법론을 펼쳐 놓고도 저자는 결국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소설 쓰기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글쓰기 자체를 즐기는 자발적인 습관이라는 것이다. 열 번째 판을 거듭하며 예문과 작가들의 격언을 더한 덕분에, 이 책은 작법서이면서 그 자체로 읽는 즐거움도 놓치지 않는다. 소설 읽기도 익숙지 않던 내가 이 책을 덮으며 품게 된 욕심이 하나 있다.

더 보기: https://shinthesis.com/라이팅-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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