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인들의 인도주의는 범죄의 결과에 의하여 그들의 자연스러운 분개가 자극되지 않는다면 처벌을 면제해 주거나 처벌을 경감시켜 주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야만인들은 어떤 종류의 행동으로 인하여 실제로 어떤 결과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 행위의 동기에 관해서는 매우 민감하지도 않고 그것을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도 없다.
『도덕감정론』, 애덤 스미스 (을유문화사) p.193
우리는 이성이 문명을 이룩한 근간이라고 믿는다. 동시에 문명이 인간을 더욱 이성적으로 만들어 준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 시간에도 지구상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생각하면 문명이 반드시 이성적인 것만은 아닐 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아니, 어쩌면 문명이란 오히려 인간의 비이성적 행태의 근간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세상의 숱한 폭력들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 문명과 그것을 쥔 인간들의 분개가 아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테니까. 이성을 가진 문명인을 그렇지 않은 부류와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비이성적 분개의 유무라는 점은 참으로 역설적이 아닐 수 없다.
문명은 이성의 존재 여부를 기준으로 인간 중 일부를, 그리고 인간 아닌 존재 전체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는 인간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자의식을 갖게끔 한다. 그리고 일부 인간에게는 그 자의식의 정도가 극단적으로 강화되어, 종국에는 자신의 분노 섞인 감정을 거리낌 없이 표출할 자격을 스스로 부여하기에 이른다. 전쟁을 일으키는 정치인이 거의 예외 없이 자의식 과잉에 사로잡힌 인물이라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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