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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오남용에 관한 오해와 진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은 2024년에 우리나라 성인의 약 75.6%가 편의점에서 상비약을 구입한 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제는 병원 진료 후 약국에서 약을 조제 받는 것만이 약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 아닌 셈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편리하게 약을 선택하고 복용하는 과정에서 정확한 복용법을 모른 채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체 약물 관련 사고의 상당수가 ‘잘못된 복용 방법’이나 ‘중복 복용’ 같은 오남용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특히 이러한 사고는 의사 처방약뿐만 아니라 우리가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에서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전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약은 분명 우리 몸을 살리기도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해가 되기도 합니다. 오남용의 많은 경우는 ‘몰라서’ 또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보았을 약물 사용의 오해와 그 진실을 짚어보겠습니다.

약이 크면 잘라 먹어도 된다?

알약이 너무 커서 삼키기 어려워서 반으로 잘라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서방형 정제처럼 약효가 서서히 나오도록 설계된 약을 자르면, 약 성분이 한꺼번에 방출돼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코팅약이나 장용정처럼 위가 아닌 장에서 녹도록 설계된 약도 자르면 약효가 떨어지고 위장 자극이 생길 수 있지요.

약의 크기가 복용하기에 부담스럽게 크다면, 의사에게 다른 제형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구강에서 녹는 약이나 액상 제제처럼 삼키기 쉬운 약으로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증상이 좋아지면 약을 중간에 끊어도 된다?

감기 증상이나 피부병 등은 증상이 가라앉으면 중간에 약을 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일부 약, 특히 항생제나 스테로이드제는 반드시 정해진 기간을 채워 복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중간에 끊게 되면 병원균이 완전히 사멸하지 않아 재발 위험이 높고, 항생제의 경우 내성균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증상이 좋아졌더라도 처방 기간은 반드시 지키고, 부작용이 우려될 경우 의료진과 상의 후 복용 방법을 조정해야 합니다.

남은 약, 나중에 다시 먹어도 된다?

예전에 남긴 약을 증상이 비슷할 때 다시 꺼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번거롭게 병원과 약국을 다시 가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이는 무척 위험한 행동입니다. 단지 증상이 비슷하다고 원인까지 같은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항생제처럼 정해진 기간을 지켜야 하는 약을 중간에 멈췄다가 다시 먹으면 내성균을 만들 수 있습니다. 처방받은 약은 끝까지 복용하는 게 원칙이지만, 혹시라도 남은 약은 절대 재사용하지 말고 근처 폐의약품 수거함에 폐기해야 합니다.

진통제는 아플 때마다 먹어도 된다?

두통이나 생리통처럼 반복되는 통증에 진통제를 습관처럼 복용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통제는 단순히 통증을 줄이는 약일 뿐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자주 복용하거나 오래 사용할 경우 위장 출혈이나 간 손상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지요.

진통제 복용은 3일 이상 지속되지 않도록 하고, 통증이 반복되면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특히 일부 진통제는 간독성까지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됩니다. 통증이 자주 반복된다면 약보다 원인 치료가 우선입니다. 진통제는 필요한 경우에만 일시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일반의약품은 많이 먹어도 안전하다?

일반의약품은 의사의 처방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지요. 특히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감기약이나 소화제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복합 감기약처럼 여러 성분이 섞여 있는 약들은 흔히 같은 성분을 중복 복용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특히 해열진통제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은 하루 4,000mg 이상 복용하면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데요. 여러 약을 섞어 복용하면 자신도 모르게 허용량을 초과할 수 있습니다. 일반의약품이라도 성분과 용량을 반드시 확인하고, 증상이 지속되거나 복용량이 늘고 있다면 의사나 약사에게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감기약을 수면제 대용으로 쓸 수 있다?

감기약을 먹고 졸음이 온 경험 때문에 이를 수면제 대신 삼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감기약에 들어 있는 항히스타민 성분 때문인데요. 항히스타민제는 장기 복용 시 집중력 저하, 기억력 감퇴, 구강 건조 등 여러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특히 고령자에게는 인지 기능 저하와 혼동 등의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납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약 대신 수면 위생을 개선하거나 병원을 찾아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감기약은 어디까지나 감기에 쓰는 약입니다.

약을 물 없이 먹어도 괜찮다?

성격이 급하신 분들 중에는 알약을 물 없이 삼키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무척 위험한 행동인데요. 약이 식도에 걸릴 경우, 식도 점막이 손상되고 심하면 궤양이나 천공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물 없이 삼킨 약은 위장에서 빠르게 녹지 않아 효과가 떨어질 수 있지요.

약은 반드시 충분한 양의 물(최소 150ml)과 함께 복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특히 침 삼키듯 억지로 삼키거나 눕기 직전에 복용하는 습관은 피해야 합니다.

여러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함께 먹어도 괜찮다?

내과, 정형외과, 정신건강의학과 등 다양한 곳에서 각각 처방받은 약을 동시에 복용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만약 의사 간 정보 공유가 없다면 약 성분이 중복되거나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위험하겠지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DUR은 처방 시 중복, 금기, 병용 금지 약물을 실시간으로 점검해 약사나 의사가 경고를 받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환자 역시 복용 중인 약을 병원마다 정확히 알리고, 가능하면 한 곳의 약국에서 조제를 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렇게 하면 복약 이력을 통합 관리할 수 있고, DUR 시스템의 효과도 극대화됩니다.

임신 중엔 약을 먹으면 안 된다?

임산부는 태아에게 영향을 줄지 걱정되어 약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약까지 끊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임산부가 고열이 있는 상태를 방치하면 태아의 신경계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임신 중에도 비교적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는 약물이 있습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물론, 의사와 상의하여 적절한 약을 선택해서 복용해야 하겠지요. 다만 ‘임신 중 약은 무조건 금지’라는 오해에서는 벗어나야 합니다.

어린이에게 어른 약을 줄여서 줘도 된다?

아이에게 줄 약이 없을 때 어른이 처방받은 약을 반으로 잘라서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작은 어른이 아닙니다. 체중, 간 기능, 신경계 발달 정도 등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이지요. 같은 약도 어른과 아이는 전혀 다르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용량 차이로 인해 과다 복용이 될 수 있고, 일부 성분은 아이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일부 해열진통제나 항히스타민제는 아이에게 사용 금기입니다.

소아는 반드시 소아용 용량에 따라 조제된 약을 복용해야 하고, 체중이나 나이에 맞는 복약지도가 필요합니다. 소아과 전문의와 약사의 지시 없이 임의로 복용량을 조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익숙한 약, 낯설게 다시 보기

약은 우리 몸을 도와주는 소중한 도구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습니다. 매일 접하는 익숙한 약일수록 더욱 신중하게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약을 먹기 전에 가끔은 멈추어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지금 이 약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올바른 용법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건강은 약의 효과와 함께 그것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사용하는 우리의 태도가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글은 2025년 5월 2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실린 글입니다.1 저는 의사이자 작가로서 건강, 인문학 등을 주제로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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