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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읽을 책 다섯 권

​그 덥던 여름도 어느새 지나갔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해 지는 시각도 부쩍 당겨졌다. 여름이 푹푹 빠지는 무더위 속에서 당장 눈앞에 밀려드는 일들을 쳐내느라 가쁜 숨을 내쉬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온 날들을 잠시 멈춰 서서 돌아보게 하는 계절이다.

​계절이 바뀌면 마음의 속도도 자연스레 느려진다. 이맘때가 되면 서둘러 결론을 내기보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둔 질문을 다시 꺼내 보게 만드는 책들에 눈길이 간다. 그동안 이 블로그에서 다루었던 책 가운데 가을의 결에 어울리는 다섯 권을 골라보았다.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민음사 판 표지

늙은 어부가 사흘간 사투를 벌여 거대한 청새치를 잡았으나,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나 결국 뼈만 남긴 채 항구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줄거리만 보면 지극히 단순하지만, 이 소설이 긴 세월을 넘어 여전히 읽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아내가 직장에서 싱가포르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어렵게 얻은 기회였기에 진심으로 잘된 일이라 생각했고, 초등학생인 딸아이도 함께 보내기로 했다. 부산 보건소장 일에 겨우 적응해 가던 나는 낯선 타지에서 3년을 무력하게 지낼 자신이 없어 남기로 했다. 그렇게 2025년부터 시작된 혼자만의 생활은 생각보다 허전하다. 퇴근 후 온기 없는 집에 들어설 때가 가장 힘들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화상 전화를 나누지만, 화면이 꺼지고 나면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묵직한 적막이 밀려온다.

한 달에 한 번은 싱가포르로 건너가겠다는 약속을 지금까지는 가까스로 지켜오고 있다. 딸을 만나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창밖으로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산티아고가 사투 끝에 붙들었다가 결국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보았다. 문득 좋은 남편이자 성실한 아빠로 보이고 싶어 애써온 내 마음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되묻게 되었다. 남에게 인정받는 삶과 사랑하는 이들 곁에 있는 삶은 결코 같지 않았다.

산티아고가 청새치를 잡고 나서 소년이 곁에 없음을 아쉬워하는 대목이나, 자기가 잡아 죽인 물고기에게 깊은 동류의식을 내비치는 대목에 이르면 사람이란 끝내 혼자 살 수 없다는 사실이 조용히 드러난다. 삶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인지, 아니면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내렸던 답을 글에 적어두었다.

더 보기: https://shinthesis.com/노인과-바다/

이해인의 말

몇 해 전 부산 금련산역 근처 수녀원으로 이해인 수녀님을 찾아뵈었던 적이 있다. 당시 코로나로 외부 방문이 막혀 있기도 했고, 방역 업무를 맡고 있던 터라 혹시라도 폐를 끼칠까 싶어 한동안 미루던 걸음이었다. 경비실에 인사를 드리고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저 멀리서 수녀님이 먼저 마중을 나와 계셨다. 화단에서 방금 꺾어 오셨다며 백일홍 한 다발을 손에 쥐여주셨다.

해인글방에 마주 앉자 요즘 즐겨 듣는다며 음악을 틀어주시고는 엽서와 사진, 책을 종이가방 가득 담아주셨다. 광안리 해변에서 직접 주운 조개껍데기에 예쁜 꽃을 그리고 성경 구절을 적은 선물도 건네주셨다. 암 투병을 겪은 뒤로는 주변에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명랑 수녀가 되려 노력하는 중이라 하셨는데, 뵙는 내내 정말 그 별명처럼 밝은 에너지가 가득했다. 그날 헤어지며 받아온 책이 이 책이다.

수도자로 살아온 50여 년의 세월을 열하루에 걸친 인터뷰로 풀어낸 기록이다. 몇 벌 안 되는 수녀복이 가진 옷의 전부라는 대목이나, 집필로 생긴 인세를 모두 수녀원으로 보낸 뒤 병원비와 교통비는 필요한 만큼만 받아 쓴다는 대목에서는 안타까움 대신 깊은 부러움이 밀려왔다. 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얻게 되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보다 오직 주민에게 도움이 될 일만 고민하면 되는 공직의 자리 역시 수도자의 삶과 묘하게 닮아있었다.

인터뷰 끝자락에 안희경 작가가 세상 사람들에게 더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묻는다. 그 답으로 수녀님이 꺼낸 한마디는 짧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상하게 다시 떠오른다.

더 보기: https://shinthesis.com/이해인의-말/

10년 전에서 온 편지

20여 년 전 늦가을이었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세 번째 심장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불안감에 잠이 오지 않아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까지 5층 병실 창가에 앉아 창밖 어둠을 내려다보았다. 응급실로 들어오는 구급차 외에는 오가는 이도 드문, 고요하다 못해 스산한 한밤중의 병원이었다.

그때 길 건너 3층쯤 되는 건물 한 곳에서만 불빛이 환하게 새어나왔다. 천장의 형광등이 줄지어 켜져 있었고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잠들지 못하던 아버지에게 저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의과대학 도서관이고 저 사람들은 의대생이라고 알려주셨다. 나는 수액을 주렁주렁 매달고 생사를 가르는 수술을 기다리는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들은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병실에서 도서관을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병실을 바라보는 삶을 살겠노라 마음깊이 다짐했다.

이 소설은 2005년 일본의 한 중학교에서 졸업생들이 10년 후의 자신에게 쓴 편지가 뒤늦게 배달되는 이야기다. 타임캡슐 회사가 편지를 보관했다가 10년 뒤에 부치는데, 이사 등의 이유로 끝내 전하지 못한 다섯 통이 남는다. 주인공은 그 다섯 사람을 찾아 나선다. 저마다 절망 한가운데 놓여 있던 이들은 오래전 자신이 쓴 글을 읽는 순간 눈물을 흘리며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에는 세 가지 쓸모가 있다고 정리했다. 지나간 것은 슬픈 대로 기쁜 대로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것,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으므로 미리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결코 짐작할 수 없는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3개월마다 정기진료를 받으러 그 병원에 갈 때면 지금도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입원했던 병실 창문을 올려다보곤 하는데, 그 창 안의 열여덟 살은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진다.

더 보기: https://shinthesis.com/10년-전에서-온-편지/

단순한 삶

신혼여행으로 갔던 이탈리아 아시시에서는 호텔이 아니라 수녀원에 묵었다. 신혼여행과 수녀원이라는 조합이 어색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덕분에 다른 여행지에서는 얻기 어려운 소박한 감동을 안고 돌아올 수 있었다. 첫날 아침 벽에 난 작은 창을 열어젖히자 넓은 움브리아 평원 위로 안개가 나지막이 깔린 풍경이 펼쳐졌다. 수녀님이 준비해주신 정갈한 빵 몇 개와 커피로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거대한 브로콜리처럼 보이는 올리브나무들, 아스팔트 대신 닳아서 매끈해진 돌이 박힌 바닥, 수 세기를 한자리에서 버텨온 석조 건물들이 좁은 길 양옆으로 사이좋게 늘어서 있었다. 그 골목을 오래 걸으며 아내와 나는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채워갈지 묻고 답했다. 떠나는 날 아침 다시 찾은 시청 광장에는 관광객 대신 길을 쓸던 청소부와 카페 문을 열던 점원이 있었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비쳤다.

이 책은 1895년에 나왔다. 저자가 아내와 함께 파리의 빈민가 아파트에서 검소하게 살며 쓴 책이다. 130년이 지나도록 지적하는 대목이 하나같이 지금 우리의 이야기와 닮아있다. 단순함은 기술에 앞서 마음가짐이라는 것, 권위에 대한 욕심과 남에게 자랑하려는 마음이 삶을 단순함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 그리고 삶의 중심을 가족으로 되돌리는 일이 그 첫걸음이라는 사실이다.

책장을 덮고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권위적인 모습은 없었는지, 과시욕을 품지는 않았는지 물었을 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이 블로그에 남긴 글에 관한 사소한 고백도 함께 적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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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생활의 즐거움

어릴 적 나는 두꺼운 책에 일종의 공포심이 있었다. 학교에서 억지로 봐야 하는 교과서를 빼면 백 페이지가 넘는 책은 펼쳐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다 열 살 무렵 병원에 입원하면서 한동안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었고, 무료한 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머리맡에 부모님이 놓아두신 책이 눈에 띄었다. 아홉 개의 점을 네 개의 직선으로 모두 지나가게 하라는 식의 문제가 담긴, 교과와는 아무 상관 없는 수학 문제집이었다.

누가 읽으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고 숙제처럼 검사받을 일도 없었다. 오로지 호기심으로 책을 펼쳐 한 문제씩 풀어가는 동안 기분 좋은 성취감이 차올랐다. 한 권을 마치고 다른 분야의 책도 그렇게 읽어나갔다. 병원 침대 위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사실은 책에 담긴 내용 그 자체보다, 남에게 인정받는 일보다 스스로 만족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이 단순한 사실을 120년 전에 삶의 철학으로 정립한 사람이 있다. 지적 생활이라는 말을 처음 쓴 저자는 물질문명 앞에 비굴해지고 인기에 영합하는 지식인들을 보며, 지적 생활이란 타인의 인정보다 스스로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책은 누군가의 인생 상담에 답장을 보내는 형식으로 쓰여 있으며, 워즈워스나 칸트, 니체, 바이런 같은 이들의 생활 방식도 함께 들여다본다. 지적 생활에는 건강한 몸이 필요하다는 것, 지적 생활에는 계급이 없다는 것, 그리고 남의 인정보다 스스로의 만족이 중요하다는 것이 내가 추린 세 가지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 100명 가운데 44명은 지난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잡지 한 권도 책으로 쳐주는 조사인데도 그렇다. 사람들이 책에서 즐거움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 블로그에서 왜 하필 책을 다루는지,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르는지, 그리고 그 기준이 이 100년도 더 된 책의 메시지와 어떻게 겹치는지를 글에 정리해두었다.

더 보기: https://shinthesis.com/지적-생활의-즐거움/

다섯 권을 늘어놓고 보니 하나의 공통점이 보인다. 모두 무언가를 더 쌓으라고 말하는 대신, 이미 지나온 시간을 다시 들여다보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여름이 물러가고 공기가 서늘해지는 이 계절에 참 어울리는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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