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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기에 쓸 수 없는 글

나에게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을 하나 꼽으라면, 내가 생각하는 바를 가감 없이 글로 표현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오해할까 봐 미리 확실히 해두자면, 그 누구도 내가 글을 어떻게 써야 한다고 또는 쓰지 말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이는 없다. 나 스스로 공무원이라는 역할을 의식하며 괜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자기 검열’을 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방금 ‘오해할까 봐’로 시작한 문장이 바로 그 좋은 예가 되겠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아닌가 습관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문득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서 느낀 바가 있어서 글을 쓰고 싶은데 누군가는 그 글을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고, 인권에 대해 쓴 글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치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공무원으로서 일하는 어려움에 대한 글이 누군가에게는 나태함이나 배부른 소리로 여겨질 수도 있다.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내가 일하는 직장의 입장이라고 오해될 소지도 있다.

지금 시원하게 써내려간 글 하나가 혹시라도 내가 나중에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는 자리를 맡게 되었을 때 공격받을 여지를 남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뉴스를 보라. 나중에 어떻게 될지 생각하지 않고 살면서 SNS에 남긴 거친 글 하나, 주위에 기분 내키는 대로 했던 말 한마디 때문에 한 방에 훅 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면, 글 전체를 복사한 뒤 제미나이나 클로드에게 붙여넣고 ‘이 글이 나중에 누군가로부터 공격의 빌미가 될 수 있을까. 향후 50년 간 내가 마주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서 평가해 줘.’라고 물어야 하나 싶다. 사실, 그렇게 묻기도 한다.

이러한 자기 검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아니 스스로 포기한 상황은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더욱 버겁다. 자기 검열의 갑갑함은 또 다른 차원의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과연 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건가’, ‘나중에 나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후회가 없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공무원을 하는 건 그만한 장점이 있어서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그래, 공무원 하길 정말 잘했어’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직업인으로서 내가 하는 일에 대체로 만족한다. 이익을 따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뿌듯함, 일반적인 의사를 했다면 더 많은 돈을 벌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족하다고 느끼는 경제적 안정감, 그리고 부질없다고 치부하기에는 나를 이 자리에 묶어두는 중요한 요소로 실재하는 사회적인 대우에서 오는 자부심.

하지만 동시에, 나를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묶어두는 이런 달콤한 것들이 내가 자유로운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하는 대가로 취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인지 의문이 든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주는 장점들이 내가 거침없는 주제로 글을 쓸 자유, 좀 더 본질적으로는 그 글에 담길 내 사유를 저버릴 만한 것인가. 더 나아가 그 자유가 한 번뿐인 나의 삶에서 나 자신을 발전시키고 결국에는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데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면,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내 인생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요 몇 달간 공무원을 계속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주는 장점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공무원을 떠나서 내가 쓰고 싶은 글 거침없이 쓰는 삶을 살 것인가.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공무원을 계속 하겠다고 결정했다. 자기 검열의 새로운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TV에 나와서 악악대는 정치인들이 퍼뜨리는 증오심, 학교에서 행패부리는 몰상식한 부모들이 선생님들에게 가하는 정신적 트라우마, 온갖 기묘한 일들을 벌이는 인플루언서들이 아이들 정서에 끼치는 악영향. 이들 모두가 자기 검열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결과, 세상을 어지럽히고 자신을 망치게 된 것들이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그런 이들을 비판하는 글을 쓰는 일에 꽤나 의욕적이었다. 즉, 내가 쓰려다가 자기 검열 때문에 그만둔 글 중 상당수는 나 잘난 맛에 사로잡혀서 남을 비판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비판하려는 바로 그들이 쓸 법한 글이었으며, 그 결과 나 자신을 더욱 사납게 만드는 글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생각을 날것 그대로 가감없이 세상에 표현하지 않고 스스로 제약을 둔다는 점이 꼭 나 자신에게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그러한 자기 검열을 통한 덕분에, 타인에 대한 비판을 거두고 혹시 나는 잘못한 점이 없는지, 나 자신은 남을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를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공무원이기에 느꼈던 자기 검열의 갑갑함. 바로 그것 덕분에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좀 더 순해지고, 공정해지고, 신중해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마다 자신만의 주장을 내세우기 바쁜 세상에서, 공무원이라는 신분 탓에, 혹은 덕분에, 스스로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은 차라리 다행이다.

내가 글을 통해 정말로 바란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본다. 그것은 나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 자유는 더 높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더 나은 인간으로서의 거듭남이다. 그 점을 되새긴다면, 공무원이라는 직업에서 비롯된 자기 검열은 오히려 내가 거부하기보다는 다행으로 여겨야 할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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