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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광고에 없는 한 가지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 운전대를 잡고 오늘은 저녁으로 뭘 해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오늘은 밖에서 간단히 때우고 들어가는 쪽으로 마음을 돌린다. 요리를 하고, 치우고, 설거지까지 하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시간은 시간대로 써야 하고. 음식 값이 비싸다고 하지만 그런 수고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결코 과하다고만 할 수 없다. 그렇게 나름의 합리화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경로에서 잠시 벗어나 벡스코 맞은편으로 차를 돌린다. 돼지국밥이 생각나면 퇴근길에 종종 들르는 곳이다.

자리를 잡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맞은편 벽에 걸려있는 TV 화면을 바라본다. 호르무즈 해협 사태와 요동치는 국제 유가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한 3분쯤 지났을까. 뉴스가 멈추고 광고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이 나오고 그들을 보듬는 착한 한국인들이 나온다. 어디서 한번쯤은 들어본 듯한 단체의 이름이다. 하지만 그런 이름이 하나는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마도 기분만은 아닐 듯하다. 국제, 구호, 난민, 미션, 세이브 같은 그럴듯한 단어들을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면 경우의 수만 따져도 여러 개의 단체 이름은 손쉽게 만들 수 있을 테니. 저 업계도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이내 내 시선은 TV에서 국밥이 펄펄 끓는 뚝배기와 그 옆에 차려진 반찬들로 향한다. 스테인리스제 은빛 밥공기의 뜨거운 뚜껑을 손이 데지 않게 조심스럽게 열어서 열기가 조금은 빠지도록 놔둔다. 그 사이에 양파와 마늘이 든 접시를 발견하고 양파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쌈장에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이번에도 함께 놓여있는 두어 개의 고추를 발견하고, 매운 걸 못 먹으니 안 가져와도 된다고 미리 말한다는 걸 깜박했음을 또 뒤늦게 알아차린다. 다음번에 왔을 때는 미리 말해야지. 이것도 누군가 애써 농사지은 걸 텐데 말이다. 숟가락을 들어 다대기장을 조금 덜어서 이제 조금은 조용해진 돼지국밥에 넣어서 휘휘 젓고, 간을 맞추기 위해 새우젓도 적당히 넣는다. 국물을 약간 떠서 후후 분 다음에 맛을 보니 이제 간은 어지간히 맞는 것 같다. 식은 소면 뭉치를 국밥에 풍덩 빠뜨리고 젓가락을 두 손에 나눠 쥐고 풀어준다. 그다음 마지막으로 부추가 담긴 접시를 들어서 부추가 국물을 반쯤 가릴 정도로 털어넣는다. 아, 부산에서는 정구지라고 한다.

비로소 밥을 말아 첫 숟갈을 뜨려고 하는데, 방금 전에 보았던 광고가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복받은 삶을 사는데, 지금 이 순간 같은 하늘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하루하루 생사의 갈림길에서 신음하고 있겠구나. 하지만 그런 광고를 보았음에도 선뜻 그 광고에 나온 계좌로 돈을 보내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그 돈이 어디로 향할지 솔직히 좀 미심쩍었기 때문이다. 그런 광고를 하려면 돈이 적잖게 들 텐데 차라리 그 돈으로 아이들을 도와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도 왜 그 광고에는, 그렇게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그들의 마음이 담긴 바로 그 광고에는, 정작 그 아이들을 직접 도울 수 있는 그 아이들의 계좌번호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구호, 난민, 나눔 뭐 그런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단체의 연락처나 계좌번호 말고, 바로 그 아이들의 계좌번호 말이다.

물론, 조직을 운영하는 데는 돈이 든다. 그런 조직을 운영해서 결과적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다. 차라리 이건 어떨까? 그 단체의 계좌번호 바로 밑에 광고에 불쌍하게 등장한 아이 본인의 계좌번호를 함께 실어주는 거다. 그 단체의 활동을 지지하고, 그 단체의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사무실 임대료를 내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위의 단체 계좌번호로 보내도록 하고, 그게 아니라 정말 그 아이의 처지에 공감이 되어서 아이에게 직접 지원하고 싶은 사람은 아이에게 직접 돈을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 기부를 고민하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망설이게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자기 돈이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는 점인데, 그 의구심을 해소하는 것만으로도 더 많은 기부로 이어지는 순기능이 있지 않을까? 아이를 돕겠다고 기부했는데 엉뚱한 이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면 기부를 한 사람 입장에서는 무척 화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기부자로서 자신의 기부금이 향할 종착지에 대한 최소한의 결정권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약자를 앞세워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행위만큼 추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식당에서 보았던 그런 광고를 내보내는 이들 모두가 아이들의 불쌍한 이미지를 팔아서 기부 장사를 하는 이들은 아닐 것이다. 정말로 순수하게 아이들을 도와주는 고귀한 뜻을 실천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만약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정말 인류애를 실천하기 위해서 그런 단체에서 일하는 거라면, 지금부터라도 단체의 계좌뿐 아니라 아이 개인의 계좌도 광고에 함께 내보내면 어떨까. 아이들을 내세워서 자기 배를 채우는 나머지 가짜들과 구분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좋은 일 하면서 도매금으로 의심받는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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