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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설 힘이 필요할 때 읽어야 할 책 다섯 권

1955년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태어난 아이 698명을 40년 동안 추적한 연구가 있다. 그중 201명은 가난과 불화와 방치가 겹친 고위험군이었다. 상식대로라면 대부분 무너졌어야 한다. 그런데 그 가운데 72명이 별 문제 없이 건강한 어른으로 자랐다. 연구진이 찾아낸 공통점은 하나뿐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편이 되어준 어른이 곁에 한 사람은 있었다는 것.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은 그렇게 알려졌다. 무너지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무너진 뒤에 다시 일어서는 능력을 가리킨다.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경험 속에서 길러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기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여기 다섯 권은 그 방법을 각자의 자리에서 보여준 사람들의 기록이다.

10년 전에서 온 편지

붉은 배경과 함께 손편지라는 제목이 있는 책 표지

고등학생이던 해 늦가을, 나는 세 번째 심장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각에 5층 병실에서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응급실로 들어오는 앰뷸런스 말고는 오가는 사람도 없었다. 그때 유독 환하게 불이 켜진 3층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에게 저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의과대학 도서관이라고 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의대생이라고 했다. 나는 수액을 주렁주렁 매단 채 생사를 가르는 수술을 기다리는데, 길 하나 건너에서는 또래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병실에서 도서관을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병실을 바라보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꼭 10년 뒤인 2006년에 의사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기타가와 야스시 (北川恭士)의 『10년 전에서 온 편지』는 2005년 일본의 어느 중학교 졸업식에서 시작한다. 졸업생 스물세 명이 10년 뒤의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 타임캡슐 회사가 그 편지를 보관했다가 배달하는데, 이사를 갔거나 연락이 끊겨 전하지 못한 다섯 통이 남는다. 주인공은 그 다섯 사람을 찾아 나선다. 하나같이 무너져 있는 상태에서 편지를 받는다. 처음에는 경계하다가 10년 전 자기 글씨를 보는 순간 울음을 터뜨린다. 여기서 편지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지금의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다. 회복탄력성이 관계에서 온다면, 그 관계에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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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 책 표지, 전통 한국화 스타일의 일러스트와 함께 제목과 저자 정보가 포함됨.

외과 레지던트로 일하던 시절, 결혼한 뒤로 집에 들어가지 못한 날은 병원 당직뿐이었다. 그 당직이 유독 아쉬웠던 것은 아내와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우는 아이를 달래다 웃는 얼굴을 보는 시간을 하루 통째로 잃기 때문이었다. 하루가 그런데 18년이라면 어떨까.

정약용은 마흔에 당파 싸움에 밀려 유배를 떠났다.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는 그가 18년 동안 두 아들과 형제와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이다. 놀라운 것은 그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데 지면을 거의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폐족이 된 상황이 오히려 두 아들에게 공부에 매진할 기회라고 썼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벼슬길에 나갈 수 없게 된 아이들에게 건넨 말이다. 언뜻 잔인하게 들리지만 뜻은 다른 데 있었다. 선택지가 줄어들면 남은 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약용은 상황이 언젠가 달라진다고 믿었다. 다만 그 기회는 준비한 사람만 잡는다고 못 박았다. 200년 전 편지인데 지금 읽어도 위로가 아니라 처방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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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많은 사람들이 잘되는 이유

책 표지: '걱정 많은 사람들이 잘되는 이유'라는 제목과 'The Positive Power of Negative Thinking'이 적혀 있으며, 중앙에 우산을 쓴 사람 일러스트가 보임.

밝고 긍정적인 태도는 오랫동안 미덕으로 대접받았다. 반대로 최악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어딘가 어둡고 피곤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의 밑바닥에 무엇이 깔려 있었는지 떠올려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집값은 계속 오른다는 믿음, 빚은 어떻게든 갚을 수 있다는 낙관. 좋은 일은 대비하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나쁜 일은 대비하지 않으면 그대로 맞는다.

심리학자 줄리 K. 노럼 (Julie K. Norem)의 『걱정 많은 사람들이 잘되는 이유』는 낙관주의를 떠받드는 통념에 정면으로 맞선다. 저자는 잔을 보고 반쯤 찼다고 여기는 사람을 전략적 낙관주의자로, 반쯤 비었다고 여기는 사람을 방어적 비관주의자로 나눈다. 방어적 비관주의자는 일이 틀어질 가능성을 미리 따져보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그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 다음 준비의 동력으로 바꾼다. 관찰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이 방식의 핵심이다. 2015년 메르스가 전국을 휩쓸던 때, 내가 일하던 병원이 전담 병원으로 지정되자마자 나는 N95 마스크를 박스째 사들였다. 겁이 많아서 그랬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겁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이 책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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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책 표지, 제목은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이며, 과거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내용.

2015년 여름 제주도 곶자왈에 간 적이 있다. 숲 바깥은 한여름이었는데 안으로 몇 걸음 들어서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활엽수와 침엽수가 뿌리를 포개고, 바닥에는 양치식물과 이끼가 자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느 지점은 후덥지근해 땀이 흐르다가 조금만 옮기면 서늘해져 팔에 소름이 돋았다.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함께 사는 이행지대이기 때문이다. 기후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경계다.

나탈리 크납 (Natalie Knapp)의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은 그 이행지대의 숲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삶의 과도기로 옮겨간다. 밖에서 보면 이행지대는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급변하는 환경이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다. 과도기를 통과하는 당사자에게 그 시기가 역동성이 아니라 불확실성으로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저자는 철학과 문학과 과학을 가로지르며 그 불안한 구간이 동시에 창의와 도약이 일어나는 구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삶의 어느 경계에 서 있다고 느낀다면 이 책을 권한다. 곶자왈이 그토록 풍부한 생태계를 품게 된 이유가 바로 그 경계였다.

더 보기: https://shinthesis.com/불확실한-날들의-철학/

모든 삶은 흐른다

모든 삶은 흐른다 책 표지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이던 무렵이다. 반에 누구는 스마트폰이 있다며 자기도 사 달라고 떼를 썼다. 손바닥 화면 대신 더 넓은 세상을 먼저 겪었으면 하는 마음에 한참을 미뤘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녹록지 않아 보이는 것도 이유였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 내 부모도 나를 보며 비슷한 고민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태어나 늘 비실비실하던 아이를 두고 그들은 어떤 미래를 그릴 수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부모님은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에게 으레 걸었을 법한 기대를 나에게 걸지 않았다. 나를 통해 훌륭한 부모임을 증명하려 하지도 않았다. 나는 단 한 번도 부모님의 노력을 증명하는 수단인 적이 없었다. 로랑스 드빌레르 (Laurence Devillairs)의 『모든 삶은 흐른다』를 읽으며 그 사실을 다시 꺼내 보게 됐다. 바다를 은유 삼아 삶을 들여다보는 이 책은 우리 뜻대로 되는 일이 생각보다 적다는 것을 차분하게 짚는다. 삶은 우려한 대로도, 기대한 대로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바다처럼. 카우아이 섬 연구가 말한 그 한 사람의 어른이란 결국 아이에게 아무것도 증명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다시 일어서는 힘은 그런 자리에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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