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천재성은 어떻게 사라지는가』는 신간 뉴스레터를 보다가 발견한 책이다. 저자 이름이 낯설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쓴 토드 로즈(Todd Rose)는 앞서 서평으로 다루었던 『평균의 종말』의 저자이다. 몇 달 전에 읽은 책의 저자 이름을 기억하는 걸로 봐서는 내 기억력이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균의 종말』에서도 잠깐 스치고 지나가듯 다루었지만, 저자는 학창 시절에 문제아였다. 다만, 『평균의 종말』이 토드 로즈가 자신의 삶을 통해 정립한 교육 이론인 ‘개개인성’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책이라면, 『아이의 천재성은 어떻게 사라지는가』는 저자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자전적 에세이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평균의 종말』이 먼저 나오고 『아이의 천재성은 어떻게 사라지는가』는 최근인 2026년 3월에 발간되었다. 하지만 원서는 후자가 훨씬 앞서서 2013년에 『Square Peg』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평균의 종말』의 원서 『The End of Average』는 그보다 3년 늦은 2016년에 출간되었다. 해외 서적이 한국에 번역본으로 소개될 때 독자들의 반응이 좋으면 저자의 그 이전작도 다시 소환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저자는 심한 주의력결핍장애(ADHD) 진단을 받고 순탄치 않은 시기를 보내다가 결국 18살에 고등학교를 자퇴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무렵 여자친구가 임신을 하면서 갑작스럽게 가정을 꾸리게 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2년 동안 열 군데가 넘는 최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했고, 두 아이를 복지수당에 기대어 키웠다. 스물한 살에야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야간 대학에 등록했다.
그렇게 뒤늦게 진학한 대학에서 저자는 학자로서의 잠재력을 발견했다. 유년시절 학교에서의 부적응으로 비춰졌던 권위에 대한 반항은 기존 통념에 연연하지 않는 학자의 자질이 되었고, 한 가지 과제에 진득하게 천착하지 못하는 기질은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는 탐구심으로 인정받았다. 자신의 삶을 거울 삼아 개개인의 차이가 교육에 갖는 의의를 연구한 끝에 지금은 하버드 교육대학원 교수의 삶을 살고 있다. 사람 앞 일은 모르는 거라더니 정말 그렇다.
학교 부적응자가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흔해 빠진 인생 역전 스토리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자신의 삶의 여정을 통해 보여주려고 한 것은 저자 개인의 초인적인 의지나 노력에 대한 자화자찬이 아니라, 한 인간의 성장에서 ‘환경’이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이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잠재력을 발휘할 수도, 혹은 눈 감는 날까지 자기 안에 그런 힘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원서의 제목인 ‘스퀘어 펙(Square Peg)’에 바로 그 메시지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스퀘어 펙은 둥근 구멍에 맞지 않는 네모난 못을 뜻한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는 관용구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못의 모양이 네모난 것이 결코 틀리거나 잘못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둥근 구멍과 맞지 않을 뿐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닐 무렵 나는 몸이 약했고 또래들 사이에 쉽게 섞이지 못했다. 체육 시간이 되면 반 아이들은 모두 축구하는데, 나는 혼자서 운동장 언저리에서 나뭇가지를 들고 바닥에 줄을 그으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당시의 나를 보고 누군가 미래를 점쳤다면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무척 망설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갈 때 용인 수지로 이사를 가면서 전학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리고 의도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 전학은 나의 학창 시절과 그 이후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개교한 지 3년이 채 안 된 수지의 중학교는 서울에서 다니던 학교에 비해 여러모로 체계가 없었는데, 오히려 그러한 어수선함은 평범한 학생이었던 나를 공부깨나 하는 모범생으로 승격시켜주었다. 나를 향한 변화된 시선은 원만한 교우 관계로 이어졌고, 괜찮은 일 년을 보낸 뒤 원하던 고등학교까지 진학하며 중학교 시절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만약 서울에서 계속 학교를 다녔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이제 나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머지않아 그때의 내 나이가 될 딸을 바라본다. 마침 이 글을 쓰는 동안 아내가 나에게 걱정 하나를 털어놓았다. 딸이 요즘 만화책만 본다는 것이다. 나도 그 말을 듣고 잠깐 마음이 걸렸다. 글밥이 많은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게 부모의 바람이다. 그런데 책에서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명백히 잘못된 일이 아니라면,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못 하게 하는 것을 벌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아이가 무언가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다. 그것이 지금 부모 눈에 마뜩잖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보여주었다. 학교를 겉돌던 아이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한때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운동장 언저리에서 나뭇가지로 줄을 긋던 아이를 보고 지금의 나를 떠올릴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아이가 무엇에 빠져 있는지로 그 아이의 앞날을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SNS는 막되 만화책은 막지 말자고. SNS를 막는 것은 아직 성장 중인 아이가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해서다. 만화책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아내는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나도 이참에 좀 더 생각해 보련다.
저자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학교가 아들을 문제아로 규정할 때에도 어머니는 그 시선에 동조하지 않았다. 아들을 낮잡아 보는 말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고, 상대가 가까운 사람이어도 그랬다. 세상과 불화하던 저자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데에는 그 어머니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만화책 정도야 아무것도 아닌 일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더 큰 원칙을 향한 고민일 수도 있다. 아이를 지금 남들이 보는 대로 보지 않는 것.
이 책의 원서 제목은 스퀘어 펙이다. 동그란 구멍에 맞지 않는 네모난 못. 하지만 정말 그게 다일까. 어쩌면 네모난 못에 맞지 않는 동그란 구멍은 아닐까. 어릴 때 나는 그 못이었다. 그리고 이제 내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바라본다. 나는 아이를 깎으려 들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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