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미식의 시대입니다. 스마트폰 지도에는 숨은 맛집이 별점과 함께 뜨고, TV와 유튜브는 지역 별미를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으로 입맛을 자극합니다. 흑백요리사에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요리사들의 식당은 예약이 개시되기 무섭게 마감이 된다고 하지요.
인류가 더 맛있는 음식을 찾아나선 역사는 고대 로마의 귀족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들은 영국의 해안과 현재 프랑스에 해당하는 갈리아 지방에서 캐낸 굴을 알프스의 눈에 싸서 수레에 싣고 산맥을 넘어 로마까지 운반했지요. 대(大) 플리니우스는 《박물지》에서 이 굴을 최고의 미식으로 기록했고, 세르기우스 오라타라는 인물은 로마 최초의 굴 양식장을 만들어 부유한 귀족들에게 납품했습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식사 후에는 종종 고통이 따라왔습니다. 로마 귀족의 연회에 모인 손님들 중 일부는 한 달쯤 지나 원인 모를 고열과 황달로 앓아누웠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그것을 A형 간염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이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2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의 식탁에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조용히 찾아오는 불청객
A형 간염은 여느 식중독보다 천천히 진행됩니다.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온 뒤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약 4주, 길게는 50일에 이릅니다. 여행지에서 들른 작은 식당의 음식이 집으로 돌아온 한 달 뒤에야 열병으로 되돌아오지요. 이 긴 잠복기는 전문가들이 감염원을 추적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먼저 음식과 함께 몸에 들어온 바이러스는 장을 거쳐 간에 자리 잡습니다. 그다음 간세포 안에서 조용히 숫자를 늘려가지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면역세포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반격을 시작하면 간에 염증이 번지며 증상이 터져 나옵니다. 열흘 전, 한 달 전의 기억도 가물가물한 해산물 한 접시가 지금의 복통으로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왜 6월의 식탁이 위험한가
날씨가 더워지면서 A형 간염도 늘어납니다. 기온이 오르면 패류 양식장 주변 해수의 온도가 올라가고, 바이러스는 따뜻해진 조개 속에 농축된 상태로 살아남기 쉬워지지요. 질병관리청 분석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 A형 간염 집단발생 중 84.1%가 조개젓이 원인이었는데, 해수온이 올라가는 3월부터 신고가 늘기 시작해 여름철에 정점을 이뤘습니다.
여름은 외식과 여행이 겹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낯선 지역의 식당에 앉아 있으면 평소보다 경계심이 느슨해집니다. 애써 바닷가까지 왔는데 그 지역의 해산물을 먹어보지 않을 수 없지요. 맛깔스레 차려져 나온 생조개와 젓갈 접시를 비우고, 시원한 물 한 잔을 곁들입니다. 어쩌면 A형 간염 바이러스도 함께 말입니다.
감기 같지만 감기가 아닌
A형 간염의 초기 증상은 감기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열이 오르고 온몸이 쑤시며, 입맛이 뚝 떨어지고 속이 메스껍습니다. 보통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아세트아미노펜 같은 해열 진통제에 기대어 며칠을 더 버티게 됩니다. 이 시기가 바로 바이러스가 가장 왕성하게 배출되는 때라는 걸 모른 채 말이지요.
A형 간염으로 진행되고 있는 걸 보여주는 결정적 단서는 바로 소변 색에 있습니다. 소변이 평소보다 진한 갈색으로 변했다면 염증이 심해진 간이 빌리루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하루 이틀 뒤 눈의 흰자위가 노랗게 물드는 황달도 뒤따릅니다. 아주 드물게는 전격성 간염으로 간 기능이 급격히 무너져 간 이식이 필요한 경우도 생깁니다.
A형 간염에 관한 세 가지 흔한 오해
첫째, “음식을 펄펄 끓이면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지요.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다릅니다. A형 간염 바이러스는 열에 비교적 강해 85도 이상에서 1분 넘게 가열해야 사멸합니다. 조개가 입을 벌리면 이제 먹어도 된다는 신호로 여기는 분들도 있는데, 그 상태에서 몇 분 더 끓이고 먹는 게 안전합니다.
둘째, “젊고 건강하면 가볍게 앓는다”는 믿음입니다.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어린이는 증상 없이 지나가지만, 성인은 입원이 필요할 만큼 심하게 앓습니다. A형 간염의 증상은 바이러스가 간세포를 직접 파괴해서가 아니라, 간에 침투한 바이러스에 우리 몸의 면역 세포가 반응하면서 생깁니다. 면역이 강한 성인일수록 증상이 심해지는 역설이 생기는 이유이지요. 국내 환자 다수가 30대와 40대에 몰려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셋째, “예방접종은 어릴 때에나 맞는 것”이라는 인식입니다. 국내에서 A형 간염이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포함된 시점은 2015년입니다. 그 이전에 태어난 세대, 특히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 출생자는 어린 시절 자연 감염의 기회도, 백신 접종의 혜택도 거의 없이 자란 면역 공백 세대입니다. 실제로 2015년 조사에서 30대의 항체 보유율은 31.3%에 불과했습니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지금이라도 항체 검사를 통해 면역 여부를 확인하고 항체가 없다면 접종을 완료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예방법입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예방 수칙
다행스럽게도 A형 간염을 예방하기 위한 원칙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해산물, 특히 조개류와 굴 같은 어패류는 충분히 익혀서 먹어야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데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손 씻기까지 챙기면 완벽합니다. 식사 전후마다 손을 비누로 충분히 문지른 뒤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씻는 것이 원칙입니다. 30초라는 시간을 재는 것이 어렵다면, 손을 깨끗이 씻고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하며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마음속으로 두 번 부르세요. 그게 대략 30초입니다. 실제로 감염병 전문가들이 권하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40세 미만이고 백신을 맞은 기억이 없다면 항체 검사 없이 바로 접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40세 이상이라면 먼저 항체 검사를 받은 뒤 음성일 때 접종하는 것이 권장됩니다. 백신은 6개월 간격으로 2회 접종을 완료해야 하는데, 두 번째 주사까지 마치면 20년 이상 면역이 유지됩니다. 만성 간질환이 있거나 간 기능이 떨어진 분들은 감염 시 위험이 훨씬 크므로 더욱 적극적으로 챙겨야 합니다.
작은 준비로 더 건강한 여름을
로마 귀족들은 알프스를 넘어온 굴 한 접시를 위해 수레와 얼음, 긴 여정을 감수했습니다. 그렇게 귀하게 마련한 음식이었지만, 그것들을 즐긴 뒤에는 뜻하지 않은 열병에 시달리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먹은 것의 정체를 끝내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A형 간염 바이러스라는 존재를 밝혀내었고, 그것의 잠복기를 알며, 이제는 예방하는 방법까지 갖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 창밖 풍경을 눈에 담기 전에 내 몸을 지켜줄 든든한 방어막이 있는지 한 번쯤 확인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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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주변에서, 혹은 본인이 직접 A형 간염을 앓아보신 적 있으신가요? 댓글로 경험을 남겨 주시면 다른 분들께 생생한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