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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가 어렵다고 느낄 때 읽어야 할 책 다섯 권

퇴근길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향하는 길. 불현듯 하루 종일 한 번도 속마음을 꺼내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오전 회의에서 마음에도 없는 미소를 지었고, 점심 식사 자리에서는 동료들의 불만에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그런 날은 침대에 누워도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사람들 속에 있었는데 왜 이렇게 혼자인 것 같을까.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인간관계가 어려워질 때 우리는 대개 상대방 탓을 하거나 아니면 나 자신을 탓한다. 둘 다 답이 아닌 것 같은데 다른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다섯 권은 그런 날 밤에 손에 잡았던 책들이다.

비폭력대화

비폭력 대화 책 표지, 배경은 분홍색이며, 중앙에 큰 글씨로 '비폭력 대화'라고 적혀 있음. 왼쪽과 오른쪽에 의자 그래픽이 배치됨.

어릴 적 아버지의 산악용 망원경을 거꾸로 들어본 적이 있다. 평소에 쓰던 방향대로 보면 멀리 있는 뒷산의 헬기장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당겨져 왔는데, 거꾸로 들자 바로 앞 탁자 위의 사과가 창밖 멀리로 달아나 버렸다. 그때는 그저 신기한 장난감이라고만 생각했다. 나중에야 그것이 앞으로 살면서 마주할 현실의 예고편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같은 일을 두고도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르게 본다. 그냥 다르게 보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상대에게는 한없이 박하다. 나도 그랬고 남들도 그랬다.

종합병원 외과 레지던트 시절, 유독 한 사람이 나에게 사사건건 딴지를 걸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술방을 옮겨도, 병동이 바뀌어도, 의국에 올라와도 꼭 한 명이 있었다. 두 명도 세 명도 아니고 늘 한 명이었다. 그제야 서툴게 깨달았다. 모든 장소의 공통점은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변해야 할 사람은 남이 아니라 나였다. 마셜 B. 로젠버그 (Marshall B. Rosenberg)의 『비폭력대화』 (Nonviolent Communication)는 그 변화의 방향을 찾는 길에서 만난 책이다. 저자는 반유대 정서가 팽배하던 시대의 디트로이트에서 차별과 폭력을 온몸으로 겪으며 자란 유대인이다. 그가 평생을 걸쳐 다듬어낸 대화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관계가 틀어졌다고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 먼저 펼쳐야 할 책이다.

더 보기: https://shinthesis.com/비폭력대화/

변신

현대문학에서 출간한 변신 등 카프카 단편선 책 표지

『변신』 (Die Verwandlung)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타인을 향한 기대가 모든 파국의 기원이다.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앞에서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진실을 드러낸다. 여동생은 오빠를 돌보는 척하지만 시선의 끝은 그레고르가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해 있다. 불행한 오빠를 외면하지 않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기대, 그게 여동생의 동력이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듬고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연예인들의 시선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와 다르지 않다. 아버지는 그보다 솔직하다. 그는 애초에 그레고르를 돈 벌어다 주는 기능으로만 여겼기 때문에, 그 기능이 사라지자 미련 없이 돌아선다. 잔인할지언정 위선적이지는 않다.

그레고르 본인은 어떠한가. 그는 가족을 사랑해서 자신을 희생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해야만 가족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 그렇지 않으면 외면받을 거라는 두려움이 그를 떠밀었다. 결국 그의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가 한 세기 전에 이미 써 놓은 이 짧은 소설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효하다. 명문대에 가지 못한 자녀, 병원의 수익에 도움이 안 되어 진료받을 곳을 찾아 헤매는 환자, 좋은 직장이 없어 결혼을 포기한 이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사람을 효용성으로 저울질하고, 그 저울에서 벗어난 이들을 조용히 치워버린다. 문제는 그 저울이 언젠가 우리 자신을 향한다는 것이다. 관계를 진정으로 지키고 싶다면 상대에게 거는 기대의 틀부터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가장 적나라하게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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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의 시대

고립의 시대 책 표지

외동딸이 있다. 늘 곁에 있어 행복하지만, 문득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순간이 있다. 언젠가 내 품을 떠나 자기 삶을 살아갈 때, 같은 부모에게서 나온 형제 하나 없이 저 너른 세상을 혼자 헤쳐 나가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다. 부모로서 어쩔 수 없이 미안하고, 그래서 아이가 외로움을 덜 느끼며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진다. 노리나 허츠 (Noreena Hertz)의 『고립의 시대』 (The Lonely Century)를 집어 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저자는 외로움이 전염병만큼 위험하다고 말한다.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개인화와 비대면의 흐름은 그 문제를 훨씬 더 무겁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공유 사무실 이용자들에 대한 인터뷰였다. 업체들은 외로움을 달래주겠다며 잘 짜인 공동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정작 이용자들은 거기에서 공허함을 느낀다고 했다. 이유가 흥미로웠다. 잘 차려진 상품으로서의 공동체는 이용자들에게 기여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받기만 하고, 아쉬운 데를 채워 넣을 일이 없으니 애착도 생기지 않는다. 외로움을 달래는 데 필요한 것은 배려받는 경험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험과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자부심이었다. 아이를 외롭지 않게 키우는 방법에 대해 나는 이제까지 정반대 방향을 보고 있었다는 걸, 이 책을 덮으며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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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서평 북리뷰 독후감

적자생존.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이 문장은 자연의 섭리처럼 자리 잡았고, 어느새 우리는 그것을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한다. 선거철 뉴스는 그 축소판이다. 후보들은 자신의 장점을 알리기보다 상대의 흠을 들추는 데 열을 올린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반복된다. 남을 밟아야 내가 산다는 논리 앞에서 사람들은 다정함을 사치로 여기기 시작한다. 그런데 브라이언 헤어 (Brian Hare)와 버네사 우즈 (Vanessa Woods)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Survival of the Friendliest)는 그 전제 자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다른 인류 종을 제치고 살아남은 비결이 힘이나 지능이 아니라 서로를 보살피는 능력, 이른바 자기가축화 (Self-domestication)였다고 주장한다. 침팬지 사회와 보노보 사회의 비교, 여우를 길들인 장기 실험, 늑대와 개의 행동 차이를 통해 저자들은 다정함이 얼마나 강력한 생존 전략인지를 치밀하게 보여준다. 진화의 승자는 혼자 뛰어난 자가 아니라 함께 버텨낸 이들이었다. 인간관계가 경쟁과 계산으로만 가득 차 있다고 느껴지는 날, 우리가 본래 어떻게 살도록 진화해 왔는지를 이 책이 조용히 상기시켜 준다.

더 보기: https://shinthesis.com/다정한-것이-살아남는다/

콰이어트

책 '조용함: 내면의 힘'의 커버 이미지, 남성이 앉아 있고, 큰 글씨로 'Quiet'와 '콰이어트'가 적혀 있음.

11살 무렵 아버지의 지점 출장을 따라 수원의 초등학교로 1년간 전학을 갔다. 낯선 교실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어느 수업 시간, 선생님의 질문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나는 알 것 같았고, 침묵을 깨는 것이 오히려 환영받을 일이라 여겨 용기를 냈다. 손을 들었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반 전체의 시선이 일제히 쏟아지는 그 무게가 감당이 되지 않았다.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선생님이 앉아도 좋다고 할 때까지 그냥 서 있었다. 별것 아닌 듯한 그 기억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한 것은, 내가 나의 성격을 바꿔보려 했던 그 거의 유일한 시도가 그렇게 무참하게 좌절됐기 때문이다.

수전 케인 (Susan Cain)의 『콰이어트』 (Quiet)는 그 시절의 나 같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긴 편지 같은 책이다. 외향성이 인간의 기본값인 양 대접받는 세상에서, 조용히 사색하고 혼자 충전하는 성향은 어딘가 고쳐야 할 결함처럼 취급된다. 저자는 그 통념에 정면으로 맞선다. 세상을 바꾼 적잖은 일들이 바로 내향적인 사람들의 손에서 조용히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차분하게 짚어낸다.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결국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다. 내향성과 외향성이 어떻게 다르게 세상을 경험하는지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관계라는 오래된 숙제가 한결 수월해진다.

더 보기: https://shinthesis.com/콰이어트-시끄러운-세상에서-조용히-세상을-움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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