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필수의료라는 바다

보험은 바다에서 태어났다. 17세기 런던 상인들은 배 한 척에 전 재산을 싣고 대양으로 나섰다. 무사히 돌아오면 막대한 이익이 따랐지만, 폭풍 한 번에 모든 것을 잃기도 했다. 그들이 찾아낸 해답은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일이었다. 커피하우스에 모여 서로의 항해에 투자하고, 폭풍으로 배를 잃은 동료의 손실을 다 같이 메웠다. 그 약속 덕분에 상인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바다로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 보험의 본질은 지금도 변함없다. 위험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멈추지 않게 하는 장치, 그것이 보험이다.

의료에도 그러한 바다가 있다. 분만과 소아, 그리고 응급, 이른바 필수의료다. 태어나는 일도, 앓는 일도, 다치는 일도 그 누구도 비켜갈 수 없으니, 이 바다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 건너야 할 항로이다. 그러나 생명을 다루는 일은 최선을 다해도 뜻밖의 폭풍우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누구에게도 가볍지 않다. 환자와 가족에게는 무엇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삶의 비극이며, 의사에게도 평생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흔으로 남는다. 여기에 수억 원의 배상은 물론 형사 책임까지 뒤따를 수 있다. 젊은 의사들이 이 바다를 피하는 까닭은 뱃길이 고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최선을 다한 항해조차 한 번의 폭풍우로 모든 것을 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 이들을 항구에 붙들어 둔다.

심지어 부산은 그 바다로 나설 사람이 유독 적다. 인구 10만 명당 응급의학 전문의는 4.4명으로, 7개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적다. 외상 사망자 가운데 제때 치료받았다면 살릴 수 있었던 죽음의 비율을 뜻하는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은 11.4%에 달해 전국 평균 9.1%를 훌쩍 웃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민 네 명 중 한 명이 65세를 넘겼고, 홀로 사는 가구는 열에 넷에 이른다. 파도는 갈수록 높아지는데 바다로 배를 몰겠다는 이는 줄어만 간다. 결국 그 부담은 이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한밤중에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을 때, 아이가 열에 시달리는 새벽녘에, 곁에 받아 줄 병원이 있느냐 없느냐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갈리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그 두려움을 나누겠다고 나섰다. ‘필수의료 고액배상보험 국가지원‘이다. 분만 실적이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소아외과와 권역응급·외상센터 전담 전문의 등에게 연 175만 원의 보험료를 국가가 전액 부담한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최대 18억 원까지 배상을 보장한다. 필수의료 8개 과목 전공의도 지원 대상이다. 의사도 병원도 따로 내는 돈이 없다. 300여 년 전 상인들이 커피하우스에서 했던 일을 이제 국가가 대신하겠다는 것이다. 필수의료를 기피하게 만든 두려움의 무게를 사회가 함께 짊어지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문제는 뜻밖의 곳에 있다. 정작 진료 현장의 의사들이 이 제도를 잘 알지 못한다. 국가가 재정을 대고 보건복지부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해 시행하는 구조인데, 그 소식이 막상 당사자인 의사들에게 제대로 가닿지 못하는 실정이다. 제도를 만든 정부와 그것을 전해야 할 현장, 그 둘이 유기적으로 맞물리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수행기관이 병원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가입을 독려하는 형편이다.

자동차보험을 생각해 보자. 차를 사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그 보호망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필수의료 의사를 지키고자 만든 이 배상보험은 그 존재를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다. 국가가 제도를 갖추고 보험료까지 대신 내주는데도, 그 사실을 몰라 그냥 지나치는 의사가 적지 않다면, 나아가 그 두려움 탓에 필수의료로 향하려던 마음을 끝내 거두는 의사가 있다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이다. 필수의료를 지키는 의사들이 이 안전망을 하루빨리 확인하고, 안심하고 그 바다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의료계와 병원이 앞장서 이를 널리 알리고, 우리 사회가 그 목소리에 함께 귀 기울여야 한다. 나아가 병원을 열고 의사를 뽑는 단계에서 가입 안내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자동차보험처럼 전달 체계 자체를 손봐야 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필수의료에 삶을 빚진 사람이다. 심장 수술을 세 차례 받았고, 지금도 몇 달에 한 번 서울의 병원을 오간다. 어린 시절부터의 진료 기록이 그곳에 있어, 병원을 옮기는 일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그럼에도 공직을 마치기 전에 그 진료를 반드시 부산에서 받을 수 있게 하고 싶다. 부산의 보건의료 행정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품은 작은 꿈이다. 그 꿈은 부산의 바다로 기꺼이 나서겠다는 의사가 있어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폭풍을 무릅쓰고 다시 배를 띄운 그 옛 런던의 상인들을 움직인 것은 홀로 맞서는 용기가 아니라, 폭풍우의 두려움을 함께 나눠 지겠다는 약속이었다. 이 글이 그 약속을 널리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답글 남기기

독자들이 공감한 글

  1. Loading...

구독
공유